“불완전한 사랑, 비극적 경쟁, 그럼에도 불구하고 사랑 만세!”
1. 라헬을 사랑했으나 레아까지 어부지리(漁父之利)(?)로 얻은 야곱. 그러나 상황은 그리 쉽지만은 않았으니...
* 야곱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자신이 원했던 사람은 오직 라헬이었습니다. 그런데 레아까지 아내가 되어버렸습니다. 그의 마음이 공평하게 두 여인에게 다 갈 수 있을 것 같지는 않습니다.
* 한편 레아의 입장에서 보면, 아버지의 속임수 때문에 자신의 인생은 완전 불행 그자체가 되고 말았습니다. 그녀에게 한 맺힌 소원이 있다면, 남편의 사랑을 받아보는 것이겠죠.. 그녀가 지은 아들 이름들 속에는 이 마음이 구구절절 녹아 있음을 봅니다...ㅠㅠ
2. 하나님의 개입, 그러나 상황은 더 꼬여가게 되는데...
*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 하나님은 그 한계를 아시기 때문에 야곱을 책망하는 대신에 레아를 위로하시고자 그의 태를 여시고 아들이 태어나게 하는데...
* 문제는 하나님의 선한 개입마저도 인간의 죄성과 욕심 앞에서는 진흙탕이 되고 마는 일이 생겼으니...
* 라헬이 언니의 출산을 시기하여 남편에게 자식을 달라 소리쳤으나(그게 사람의 뜻대로 되는 것이면야...쩝) 뜻대로 안되니, 몸종을 대리모로 들여보냈고, 또 아들을 덜렁 낳게 되었단 말이죠.
3. 어느 누구에게 잘잘못을 다 덮어씌울 수도 없는 얽히고설킨 인간의 불완전한 사랑의 슬픈 모습.
* 우리내 인생이 그런 거죠, 미시적으로 잘라내어서 그것만 보면, 정말 그렇게 순수하고 아름다워 보이는 사랑도 거시적인 문맥 속에서 바라보면 이건 정말 편협하고 이기적인 사랑이 될 때가 얼마나 많은지요?
* 세계관의 한계, 경험의 한계, 죄의 유혹, 주변 사람들의 반응 등등 참 많은 요소들이 우리 사랑의 온전해지는 것을 방해합니다.
* 그런데 문제는 이 상황을 바로잡으시고자 개입하시는 하나님의 노력마저 인간의 한계와 욕심, 죄성 등이 뒤엉키면서 왜곡되기도 하고 함께 진흙탕이 되는 것처럼 보일 때가 많다는 거죠.
* eg. 사랑하는 남편과 아내이지만, 그 사랑의 관계에 끼어드는 요소들이 얼마나 많은지요? 서로 지치고 힘든 상태에서 퇴근한 분위기, 아이가 어질러놓은 집안, 양가 부모님의 개입 등등... 이런 상황에서 우리의 사랑은 진훍탕 부부싸움으로 빠져들 때가 한두번이 아닌 거죠.
* eg. 미쿡의 아르라함 링컨이 노예해방을 선언했지만, 이 때문에 남북전쟁을 해야 할 할 만큼 상황은 꼬여있었고, 실은 노예행방이라는 하나님 앞에서 당연한 가치실현마저도 북부 신흥공업자본가들의 욕구가 반영되면서 불완전한, 아니 실제적으로는 해방이 아닌, 농장에서 공장으로 장소만 옮긴 노예생활의 연장이 되고 만 것 등이 좋은 예가 됩니다.
4. 그럼에도 불구하고 하나님은 꾸준히 노력하시고, 우리 역시 포기하지 않고 꾸준히 온전한 사랑을 추구해나가야 하는 게 우리의 부르심인 거죠.
* 어제 묵상에서 나눈 것처럼, 사랑 때문에 현실의 불합리함에도 불구하고 인내하고 견뎌내는 것처럼,
* 이왕 사랑하지 않고는 살 수 없는 인생이라면, 하나님을 바라보고 하나님의 사랑을 배우면서 내 사랑을 온전하게 성숙시켜나가는 게 우리의 할 일 아닐까요?
* 하나님도 포기하지 않으시고 꾸준히 개입하셔서 당신의 사랑을 이루어 가시는 것처럼, 우리도 포기하지 않고 끝까지 한걸음씩 나아가다 보면 어느 날 문득 돌아보면 제법 내 사랑이 거룩함에 이르러 있음을 보게 되지 않을까 기대해보는 거죠^^
“사랑하는 여러분, 서로 사랑합시다. 사랑은 하나님에게서 난 것입니다. 사랑하는 사람은 다 하나님에게서 났고, 하나님을 압니다.”(요일4:7) 아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