며칠 전, 적금 해약할 일이 있어서
점심시간 쯤 은행에 갔다.
번호표를 뽑고 기다리고 있는데,
저만치 떨어진 창구 쪽에서
나와 연배가 비슷해 보이는 남자 직원 분이
내 번호를 호출하고는 상냥하게 안내를 해주셨다.
적금을 해지하겠다는 얘기를 하고 나서
직원 분이 요즘 나온 새로운 상품들을 소개해주시는데,
갑자기 느낌이 왔다.
요즘 들어 부쩍 심해진 갱년기 증상이 시작된 거다.
속에서는 뭔가 후끈한 것이 자꾸 올라오고
그 열기가 얼굴까지 전해지는 느낌이 들어서
나는 얼굴을 들 수가 없었다.
계속 고개를 숙이고 있으니까,
직원분이 얘기를 멈추더니
"차 한 잔 드릴까요?" 하고 묻는다.
홍당무가 된 얼굴로 "괜찮다" 하고는
눈도 못 마주치고 통장만 뒤적거리고 있는데
갑자기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이 드는 거다.
정황상, 남들이 보기엔
내가 마치 이 직원을 몰래 좋아하기라도 하는 것처럼,
지금 내 모습이 꼭, 짝사랑하는 사람 앞에 앉아
수줍어 어쩔 줄 몰라 하는 딱 그런 모습이었기 때문이다.
갈수록 얼굴은 더 화끈거렸고
더 이상 앉아 있을 수가 없었다.
눈치 없는 직원은 나를 걱정하는 마음에
뭐라고 뭐라고 말을 거는데,
땀까지 몽글몽글 나기 시작하자 결국,
다음에 다시 오겠다는 말을 하고는
도망치듯 은행을 나왔다.
집에 와서 숨 좀 돌리고 생각하니까
그때서야 내가 왜 그랬나 싶었다.
그냥 내 몸이 반응하는 갱년기 증상일 뿐인데
괜히 다른 사람들 오해할까봐
도망치듯 은행을 빠져나온 게 참 어이가 없었다.
걱정하던 직원에게
그냥 갱년기 증상이라 그렇다고 얘기라도 할 걸 그랬나?
그런데 생각해보니까,
‘나 갱년기라 그래요.’ 하는 것도 우스웠을 것 같다.
어쩜 나이가 들수록 더 소심해지고 생각만 많아지는지..
늙어가는 것도 서러운데
갱년기 증상에, 다른 사람들 눈치까지 보느라 더 힘들다.
나이가 들면 사는 일이 조금은 만만해지고 편해질 줄 알았더니
나이 넘어가는 고개마다 고비구나.. 생각이 드는 요즘이다.
오늘 일기 보내주신 김지우님께 선물 보내드릴게요.
요즘 갱년기라며 어떤 분이
이런 말씀을 하시더라고요.
인생에서 또 한 번의 사춘기 같은 시기를 겪는 느낌이라고..
내 기분을 나도 어쩌지 못하겠고,
갑자기 확확 열이 오르는 내 몸의 변화가 당황스럽다며 말이죠.
아이들 사춘기 보면서
´그래.. 지금은 그럴 때다. 힘들지 않게 얼른 지나가라.´
그러잖아요.
갱년기도 마찬가지 아닐까요?
그저 지금 내 나이가 지나가는 과정이라고..
지금은 그럴 때다.. 너무 힘들지 않게 지나갔으면..
그러는 수밖에요.
나한테 더 잘해주고 더 신경써주면서!
가족들의 역할도 중요하다고 하더라고요.
인생에서 넘어야 할 수많은 고개들이 있지만
그 고비도 함께 넘으면
훨씬 수월해지지 않을까 싶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