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언젠가 시를 시의 첫날밤이라고 말한 적이 있습니다. 시의 태초성, 선사성, 그 원시성, 그리하여 그 선사적인, 선천적인 충동으로서의 신명을 함께 솟구쳐내는 그 천지 공명의 교류의 천연성으로부터 시의 역사가 진행된다는 것을 은밀하게 믿었습니다. 옛말에 ‘생이지지(生而知之)’가 있지요. 시 역시 거의 생이지지일지도 모르겠습니다. 누군가가 시를 체험이라고 말한 것도 그 체험은 운명으로서의 처음을 아로새기는 일일 것입니다. 바로 이 처음으로 만난 시가 내가 꿈꾸는 시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