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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국제와의 연결 -때에 따라 희와 비가 엇갈리는 바다와 육지의 만남
백:
사는 곳이 섬이거나 삼면이 바다인 곳, 또는 일부 만이라도 바다가 있는 육지라면 언젠가는 바다를 매개로 하여 외부에서 온 사람과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타이완을 예로 들어 역사서 속에 몇 번 등장을 하였는데 선박이 해상에서 조난을 당하며 선원들이 현지에 대한 기록을 일기로 남겨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탐라문견록’과 같은 저서로 지금의 제주도와 국제와의 연결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7월 중순, 특별 취재 차 타이난을 다녀왔다. 올해 타이난은 1624년 네덜란드가 지금의 타이난 안핑구를 동인도회사 거점으로 삼으며 타이완의 국제와의 연결, 하나의 이정표로 보고 있어, 일련의 ‘타이난 400’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 타이베이 토크에서는 노 작가가 탐라문견록에 대해서 공유한다.
노: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
제1화: 1687년 조천관 주민 고상영의 안남국 표류기
《탐라문견록》을 보니 제일 멀리 표류한 사람은 1687년에 베트남까지 표류한 고상영 일행입니다. 이들은 베트남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는 중국 상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탐라문견록》에는 모두 15건의 표류기가 실려있는데, 그 가운데 제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통적인 것이 표류민들이 제주도 사람인 것을 숨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왜? 1612년에 유구국(오끼나와) 태자가 탄 상선이 제주에 표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주 목사 이가빈과 판관 문희현 등이 이 상선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죽였다는군요.
아니? 유교국가에서 어떻게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단 말입니까? 바다를 무시한 조선의 관리들 행패에 혀를 차게 되는군요. 비록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이지만 결국 인접 국가에 이런 소문은 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표류한 제주도민은 보복이 두려워 제주도민을 숨기려고 애를 쓴 것
By jennifer pai-白兆美, 최세훈, Rti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국제와의 연결 -때에 따라 희와 비가 엇갈리는 바다와 육지의 만남
백:
사는 곳이 섬이거나 삼면이 바다인 곳, 또는 일부 만이라도 바다가 있는 육지라면 언젠가는 바다를 매개로 하여 외부에서 온 사람과 만나게 될 것이란 생각이 든다.
타이완을 예로 들어 역사서 속에 몇 번 등장을 하였는데 선박이 해상에서 조난을 당하며 선원들이 현지에 대한 기록을 일기로 남겨 그 당시의 모습을 상상해 볼 수 있었다.
한국의 경우 ‘탐라문견록’과 같은 저서로 지금의 제주도와 국제와의 연결을 보여줬다고 생각한다.
7월 중순, 특별 취재 차 타이난을 다녀왔다. 올해 타이난은 1624년 네덜란드가 지금의 타이난 안핑구를 동인도회사 거점으로 삼으며 타이완의 국제와의 연결, 하나의 이정표로 보고 있어, 일련의 ‘타이난 400’ 관련 행사들을 진행하고 있다.
오늘 타이베이 토크에서는 노 작가가 탐라문견록에 대해서 공유한다.
노:
《탐라문견록》이란 1731년 9월 정운경(1699~1753)이 제주에서 듣고 본 것을 기록한 책입니다. 정운경은 제주목사로 부임하는 아버지 정필녕을 따라 제주에 와서 《탐라문견록》을 남긴 것이지요. 《탐라문견록》에는 정운경이 제주 전역을 여행하고 쓴 여행기와 제주의 특산물인 귤을 자세히 관찰하고 기록한 글도 있지만, 책의 절반 이상을 차지하는 것은 풍랑을 맞아 이국으로 표류한 제주도민의 이야기를 기록한 표류기
제1화: 1687년 조천관 주민 고상영의 안남국 표류기
《탐라문견록》을 보니 제일 멀리 표류한 사람은 1687년에 베트남까지 표류한 고상영 일행입니다. 이들은 베트남과 일본 사이에서 중개무역을 하는 중국 상선을 타고 돌아왔습니다.
《탐라문견록》에는 모두 15건의 표류기가 실려있는데, 그 가운데 제 눈에 띄는 것 몇 가지만 말씀드리겠습니다. 우선 공통적인 것이 표류민들이 제주도 사람인 것을 숨기려 한다는 것입니다. 왜? 1612년에 유구국(오끼나와) 태자가 탄 상선이 제주에 표착하였습니다. 그런데 당시 제주 목사 이가빈과 판관 문희현 등이 이 상선을 습격하여 재물을 빼앗고 그들을 죽였다는군요.
아니? 유교국가에서 어떻게 어려움에 부닥친 이들을 도와주지는 못할망정 재물을 빼앗고 사람을 죽인단 말입니까? 바다를 무시한 조선의 관리들 행패에 혀를 차게 되는군요. 비록 통신이 발달하지 않았던 시대이지만 결국 인접 국가에 이런 소문은 퍼지기 마련입니다. 그러니 표류한 제주도민은 보복이 두려워 제주도민을 숨기려고 애를 쓴 것