타이베이 토크

후계자 다툼


Listen Later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2.12.27.
-진행: 노혁이, 백조미
-후계자 다툼-

올빼미 때문에 왕위 계승에 대한 이야기를 계속 이어가고 싶다.

전세계적으로 왕위는 보통 손위형제자매의 계승권이 우선시 된다. 그리고 상위 계승권자의 모든 자손들은 하위 계승권자보다 계승권이 높다. 가령, 국왕에게 제 1왕자와 제2 왕자가 있으면, 제 1왕자가 낳은 자손은 제 2왕자보다 높게 되는 것이다.

요즘 한국에서 아주 유명했던 드라마, 슈룹. 이것도 왕위를 물려받기 위한 대군들의 경쟁을 그렸었다.

올빼미 이야기로 돌아가보면, 인조는 인조반정을 통해 임금이 된 사람이다. 인조반정은 광해군 15년에 서인 반정세력이 광해군과 대북파를 축출하고 능양군(인조)를 왕으로 옹립했던 사건. 조선 제2왕조의 창건이라고도 불리는데, 당파로만 보면 당시 대북파가 완전히 말살되었고, 이후 조선의 모든 국왕은 인조의 후손이 된다. 즉 조선 전기와 후기 왕가를 나누는 분기점이 되는 것.

광해군 역시 당시 친형을 유배를 보냈다. 광해군은 임진왜란 때 형 임해군을 제치고 세자가 되어 선조를 대신해 임시로 조정을 이끌었고, 선조가 죽은 뒤에는 측근들의 도움을 받아 왕위에 올랐답니다. 임해군은 장자이기에 세자가 되기에 더 유리했지만, 성품이 포악하고 여러 비리를 저질러 선조의 신임을 잃었어요.

광해군이 왕이 되자 중국 명나라가 광해군의 정통성을 문제 삼았어요. 광해군은 명나라에 사신을 보내어 왕위 계승을 인정받으려 했지만, 명나라는 이를 거부하고 '임해군이 왕이 되지 못한 이유를 알아보겠다'며 조선에 조사단까지 보냈답니다. 광해군과 조선 조정은 조사단에게 엄청난 은과 인삼을 주어 달랜 뒤 간신히 중국으로 돌려보냈어요. 이후 광해군의 측근인 정인홍과 이이첨은 "임해군을 그대로 두면 역모가 일어날지 모르니 죽여야 한다"고 주장하기 시작했어요. 결국 광해군은 역모죄로 임해군을 진도로 귀양 보낸 뒤 다시 강화도 교동으로 유배지를 옮기게 하였는데, 이듬해인 1609년 임해군은 죽음을 맞았어요. 그의 죽음에 대해 광해군이 사약을 내려 스스로 죽게 하였다는 설과 이이첨이 사람을 보내 임해군을 살해했다는 설이 있습니다. 결과적으로 임해군은 동생 광해군이 왕위를 지키려는 과정에서 희생된 것으로 볼 수 있지요.


중국왕조나 한국의 왕조들 역시 적장자 상속. 원칙은 첫 번째 입적(立嫡: 적자 우선), 입장(立長: 장자 우선), 입선(立善: 성품이나 능력)으로, 적자 중에서 장자가 물려받아야 하고, 적자가 없으면 서자 중 장자 우선, 그에 해당하는 사람이 병이 있거나 불효자거나 기타 계승하기 어려운 사유가 있을 때에만 3번째 순서가 적용된다. 그런데 청나라는 기존의 황위계승방식인 적장자 상속제도와 달랐다. 청나라의 왕위 계승법은 유명한 태자밀건법이 있지요. 청나라 약 306년 역사에서 가장 태평성대를 이루었던 황제 건륭제. 그는 선제인 옹정제(雍正帝) 13년(1735) 태자밀건법에 의해 황위에 오른 첫 번째 황제. 1737년부터 본격적으로 제국을 통치하기 시작해 약 60년간, 이후 太上王으로 2년을 더 대륙의 지배자 노릇을 한다.

태자밀건법은 황제가 선정한 황태자의 이름이 적힌 친서를 건청궁(乾淸宮)에 걸린 청나라의 시조 황제 순치제(順治帝, 치세: 1643~1661)가 쓴 ‘正大光明’ 편액 뒤에 숨겨 두고 密旨는 內務府에 간직했다가 황제가 죽은 후에 개봉하여 밀지와 친서를 맞추게 하여 새 황제를 옹립하는 방식이다.

최근의 유명했던 왕위 쟁탈 분쟁 사례가 또 있다. 바로 말레이시아에서 북한 김정일 국방위원장의 장남 김정남이 공항에서 암살되었다. 그날 나는 말레이시아에 친구네 집에 갔다가 오전 비행기로 타이베이로 돌아왔었는데, 타이베이에 돌아와서야 그 소식을 뉴스로 들었다. 김정남은 김정일의 첫째부인 성혜림의 아들, 김정은은 후처인 고희훈의 둘째 아들. 고희훈의 첫째아들인 김정철은 존재감이 없이 현재 김정은이 정권을 이어받았고, 여동생 김여정이 2인자 활동을 하고 있다.

최근에 또 관심이 있었던 왕위 계승 사례는 사우디아라비아.

사우디는 의외로 신생국가다. 1932년 압둘아지즈 알사우드 국왕이 건립한 나라. 왕위 계승 방법이 독특한데, 초대 국왕 뜻에 따라 장자 계승 아닌 형제 계승. 현재 7대국왕. 90년만에 7명의 국왕이 바뀌었는데, 현재 살만 국왕은 직전 국왕인 압둘라의 이복동생. 압둘라 국왕도 이복형 파흐드에서 왕위를 승계.

알사우드 초대 국왕은 호족과의 정략결혼으로 세력을 키워 1932년 사우디 왕국을 건국했다. 이렇게 결혼한 부인이 23명, 아들은 45명에 이르렀다. 그는 1953년 사망하기에 앞서 왕위 계승자로 첫째 아들 사우드를 지목하고, 또 다른 아들 파이잘을 다음 계승자로 임명했다. '형제의 난'을 우려해서다. 그의 뜻에 따라 그 이후에도 왕위 계승이 형제 간으로 이어졌다.

사우디 2~7대 국왕 6명 모두 알사우드 아들로 형제지간이다. 초대 국왕의 의지 덕분에 형제간 다툼은 줄었지만 부작용이 생겼다. 형제끼리 세습이 이뤄지다 보니 '노인 정치(gerontocracy)'라 불릴 정도로 고령화 현상이 심해졌다. 2015년 1월 80세 나이로 국왕에 오른 살만 국왕이 이 같은 형제 계승의 전통을 끊었다. 취임 직후 왕세제로 자신의 이복동생 무크린을 책봉했지만, 석 달 뒤 그를 실각시켰다. 그 대신 자신의 큰조카인 무함마드 빈나예프를 제1 왕세자, 친아들인 빈살만을 제2 왕세자로 지명했다. 왕위 계승이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62년 만에 손자 세대로 넘어간 것이다.

초대 국왕의 아들 세대에서 손자 세대로 왕위가 넘어가면서 왕자 간 분쟁이 터졌다. 2017년 6월 빈살만이 친위 부대를 동원해 사촌형인 빈나예프를 감금하고 왕세자 자리를 빼앗은 것이다. 조선시대 이방원이 일으킨 '왕자의 난'을 보는 듯하다. 빈살만 왕세자는 여기에 그치지 않았다. 그해 11월에는 정예군을 동원해 잠재적 정적인 사촌형 왕자들과 그의 측근들을 부패 혐의로 대거 체포했다. 당시 사촌형을 포함한 11명의 왕자, 여러 명의 장관 및 유력 기업인들을 구금했다. 그를 비판적인 성직자 지식인 등 500명을 호텔에 연금시켰다.

1985년생 빈살만 왕세자의 별명은 미스터 에브리씽. 빈살만의 재산이 화재인데, 약 2조달러, 2700조원, 대만돈으로는 61조원. 이재용회장이 12조원이니, 삼성 회장의 225배 재산. 누군가 빈살만의 재산에 대해 계산을 해봤는데, 하루에 1천억원을 써도 재산을 다쓰려면 77년이 걸린다는… 그런데 이 계산은 이자를 계산하지 않았다. 이자를 6%정도라고 보면, 하루에 고작 1천억원밖에 쓰지 않는다면, 매일 4천억원씩 재산이 불어난다. 그래서 매일 5천억원씩 써야 이자를 쓰면서 원금을 유지하는 정도.
예로부터 부자 걱정은 하지 않는 것이라고 들었는데, 오늘 너무 부자들 이야기를 많이 했습니다. 다음주에 뵐께요.

...more
View all episodesView all episodes
Download on the App Store

타이베이 토크By jennifer pai-白兆美, 최세훈, Rti