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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2.07.12.
-진행: 노혁이, 백조미
-노 작가의 중년의 취미-
1.
취미란 자고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친분에서 더더욱 꽃이 피기 마련인데, 취미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2.
2천년대 초반에 아저씨들은 너도 나도 섹소폰을 불었는데, 이것이 요즘에는 자전거와 등산쪽으로 다 옮겨갔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이 온통 글씨쓰고 그림그리는 분들인지라, 자전거와 등산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
3.
그러면서 80년대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던 아저씨들의 취미로 수석과 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80년대가 특히 서예, 그림, 분재가 유명했던 시기였고, 90년대는 수석의 바람이 불던 시기. 확실히 80년대에는 전국에 지금의 편의점 만큼 동네 서예학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4.
당시 분재와 수석, 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최상품은 무슨 비트코인 몇 개 값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집 한 채 값.
5.
한때 난초의 왕국이라 불렸던 대만 역시, 8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살던 나라 아닌가. 대만 난계에는 달마達摩라는 품종의 초고가 난이 있는데, 80년대에 3촉짜리 난초 한 분에 3억원을 호가했었다고 한다.
6.
엌? 달마라... 엊그제 화훼시장 한켠에 화분도 없이 뿌리채 팔리던 난초들이 달마라고 쓰여있지 않았나? 뭔 풀이름이 달마인가 했더니, 그 달마가 그 달마였나?! 검색을 해봤다.
7.
대만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보니, 마침 달마가 있었다. 7촉짜리 화분이었는데, 이런 설명이 쓰여있다.
"아버지가 퇴직하셔서 싸게 팔아야합니다. 30년 전에는 1천만NTD에 팔렸던 것이에요."
8.
당시 1천만NTD라고 하면 우리돈 4억원 정도인데, 지금 가격은 9천9백NTD, 달랑 40만원. 이 달마는 30년만에 1천분의 1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99.9%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루나만이 뭐 유일무이, 전례없던 사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9.
분재, 수석, 난초, 이 아름다운 것들에 투기라는 욕심이 붙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돈을 날렸는지 모른다. 그러고보니, 이건 뭐 시대별로 '코인'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항상 있어왔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30년 전에 저 난초 대신에 타이베이 시내에 땅을 좀 사두셨다면, 3대가 은퇴 걱정은 안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10.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정말 굉장하고 굉장하시다. 평생 일만 열심히 하시다가, 분재는 주말 나들이에 교외로 나가 구경만 하셨고, 수석도 강가를 몇번 나가셔서 돌을 주워오신 기억은 나는데 두어개 모으고 더 들이지는 않으셨다. 그림도 좋아하셔서 한 두 점 들이셨고, 오디오를 크게 한 번 지르시고는 별다른 위험한 취미가 없으셨다. 대신 자수성가하여 모은 재산으로 집을 지으셨다.
11.
30년 후에 아들 현준이는 아빠가 모은 저 고질라 인형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우리 하석 선생님과 연농 선생님께서 글씨를 주시면서, 이 글씨는 아빠가 즐겨보다가 나중에 현준이 집값으로 쓰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12.
하여튼 30년 전에 4억짜리 난초를 40만원에 파는 세상이 왔으니,
어디 난초의 세계에 좀 입문해볼까나!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2022.07.12.
-진행: 노혁이, 백조미
-노 작가의 중년의 취미-
1.
취미란 자고로 같은 취미를 가진 사람들과의 친분에서 더더욱 꽃이 피기 마련인데, 취미에도 유행이 있다는 말을 들었다.
2.
2천년대 초반에 아저씨들은 너도 나도 섹소폰을 불었는데, 이것이 요즘에는 자전거와 등산쪽으로 다 옮겨갔다는 것이다. 나는 주변이 온통 글씨쓰고 그림그리는 분들인지라, 자전거와 등산은 다른 나라의 이야기.
3.
그러면서 80년대부터 시작되어 90년대 초반 정점을 찍었던 아저씨들의 취미로 수석과 난에 대한 이야기가 나왔다. 80년대가 특히 서예, 그림, 분재가 유명했던 시기였고, 90년대는 수석의 바람이 불던 시기. 확실히 80년대에는 전국에 지금의 편의점 만큼 동네 서예학원이 있었던 기억이 난다.
4.
당시 분재와 수석, 난의 가격은 상상을 초월하는데, 최상품은 무슨 비트코인 몇 개 값을 훌쩍 넘었다고 한다. 소위 말하는 집 한 채 값.
5.
한때 난초의 왕국이라 불렸던 대만 역시, 80년대 아시아에서 가장 잘 살던 나라 아닌가. 대만 난계에는 달마達摩라는 품종의 초고가 난이 있는데, 80년대에 3촉짜리 난초 한 분에 3억원을 호가했었다고 한다.
6.
엌? 달마라... 엊그제 화훼시장 한켠에 화분도 없이 뿌리채 팔리던 난초들이 달마라고 쓰여있지 않았나? 뭔 풀이름이 달마인가 했더니, 그 달마가 그 달마였나?! 검색을 해봤다.
7.
대만 온라인 쇼핑몰에 들어가보니, 마침 달마가 있었다. 7촉짜리 화분이었는데, 이런 설명이 쓰여있다.
"아버지가 퇴직하셔서 싸게 팔아야합니다. 30년 전에는 1천만NTD에 팔렸던 것이에요."
8.
당시 1천만NTD라고 하면 우리돈 4억원 정도인데, 지금 가격은 9천9백NTD, 달랑 40만원. 이 달마는 30년만에 1천분의 1로 가격이 떨어진 것이다. 99.9% 가격이 하락한 것이다. 루나만이 뭐 유일무이, 전례없던 사태가 아니었던 것이다.
9.
분재, 수석, 난초, 이 아름다운 것들에 투기라는 욕심이 붙으면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허공에 돈을 날렸는지 모른다. 그러고보니, 이건 뭐 시대별로 '코인'의 역할을 하는 것들이 항상 있어왔던 것이 아닌가 싶은 생각도 들고. 30년 전에 저 난초 대신에 타이베이 시내에 땅을 좀 사두셨다면, 3대가 은퇴 걱정은 안해도 되었을 것 같은데.
10.
그런 면에서 아버지는 정말 굉장하고 굉장하시다. 평생 일만 열심히 하시다가, 분재는 주말 나들이에 교외로 나가 구경만 하셨고, 수석도 강가를 몇번 나가셔서 돌을 주워오신 기억은 나는데 두어개 모으고 더 들이지는 않으셨다. 그림도 좋아하셔서 한 두 점 들이셨고, 오디오를 크게 한 번 지르시고는 별다른 위험한 취미가 없으셨다. 대신 자수성가하여 모은 재산으로 집을 지으셨다.
11.
30년 후에 아들 현준이는 아빠가 모은 저 고질라 인형들을 보고 무슨 생각을 하려나. 우리 하석 선생님과 연농 선생님께서 글씨를 주시면서, 이 글씨는 아빠가 즐겨보다가 나중에 현준이 집값으로 쓰라고 하셨던 말씀이 생각난다.
12.
하여튼 30년 전에 4억짜리 난초를 40만원에 파는 세상이 왔으니,
어디 난초의 세계에 좀 입문해볼까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