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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백:
반세기 전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진먼(金門-금문)의 역할이다. 60대 시민들에게 진먼은 늘 닿을 수 없는 먼 외딴섬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같은 세대에게 ‘뤼다오(綠島-녹도)에 대한 인상을 말하라면 또 완연 다르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먼 외딴섬이긴 하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이미지는 완연 달라서 하나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사기지, 1949년 이후 중화민국의 최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양안간 첨예한 대치로 인한 국가 안보와 집권자가 통치하는 데 편리하도록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며 강압적인 정책으로 국민 자유를 박탈하였던 시대의 이른바 ‘감옥’이 소재한 곳인데 일반 범죄자보다는 이른바 ‘사상범’을 그곳에 가뒀었다.
오늘은 방송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진먼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본다.
노:
대만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말하자면 진먼고량주를 들 수 있다. 금문 고량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금문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만은 대만 본섬만 생각을 하는데, 뜸금없게도 중국의 한 귀퉁이에 금문이라는 섬이 있고, 이 섬이 바로 대만의 땅.
금문은 면적 151제곱킬로미터로 울릉도 두배 정도의 땅, 인구는 13만명. 가까운 대륙의 샤먼시와는 불과 10km 떨어진 섬. 타이완 섬과는 200km 떨어진 곳. 실제로 거의 중국 본토이기 때문에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1949년 국공내전 막바지 당시 밀리고 밀리던 중국 국민당 측의 최후의 방어선이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말기에 중국 공산당 측에서 상륙대를 밀어넣었다가 1949년 10월 24일부터 10월 26일 사이에 벌어진 고령두(古寧頭)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한 중화민국 국군이 필사적으로 저항, 인민해방군을 이겨 대륙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지역은 대만과 같이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민정 체제였던 타이완 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직접 군정이 실시되었다.
원래 중국은 타이완 본섬까지 정복할 계획. 대표적으로 1950년 5월에 하이난섬을 중국이 공격, 중화민국국군의 저항에 중공군이 1만명 가량 희생이 되었지만, 결국 중국이 하이난섬을 점령. 중국은 대만섬을 점령하려고 하는데, 김일성이 먼저 남침을 시작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6·25 직전까지 중국은 대만 주변 섬을 대부분 점령했고 대만섬 공격 날짜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6.25를 통해 미국의 대만 정책도 완전히 달라졌고, 중국도 대만을 공격할 여유가 없어져버렸다.
하여튼 인민해방군은 1958년에 진먼섬에 다시 47만발의 포탄을 쏟아부으면서 진먼 포격전을 했는데, 인민해방군 공군과 중화민국 공군 간의 공중전까지 벌어졌었다. 당시 중화민국이 금문을 지키는데 성공.
대만 전역에는 금문고량주를 파는 별도의 매장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고량주와 함께 금문의 다른 특산품을 함께 판매를 한다. 특이하게 칼을 같이 판다. 왜냐? 금문에는 하도 포탄이 많이 떨어지다보니, 칼이 또 특산품이다. 포탄 껍질로 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요리에 쓰는 칼을 많이 만든다. 진허리강다오 공장(金合利鋼刀廠). 1937년에 창업한 곳인데, 중국에서 쏜 포탄의 탄피를 녹여서 그것으로 칼을 만들고 있다. 포탄 1발로 약 60개의 칼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토치로 포탄에서 칼 한 개를 만들 양만큼의 쇠 조각을 떼어내고, 이것을 풀무에 넣고 달궈서 두들겨서 칼의 형태를 잡는다. 포탄의 철은 일단 일반 철보다 재질이 좋고 밀도가 정확하다고 한다. 그래서 3대가 쓸 수 있는 칼이라는 명성.
금합리제도창(金合利製刀廠)은 1958년 8.23 포격전 후 금문도에는 1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대검, 군인 식당과 일반 가정의 부엌칼 등 엄청난 양의 칼이 필요하게 됐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섬 전체에 버려진 포탄 탄피를 찾아 모으고 칼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1963년에는 매장을 냈으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금문도는 개방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없었고, 금문도에서 군인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갈 때 기념품으로 사가는 정도에 그쳤다. 1992년 군 통제가 해제되고 나서야 금문도는 관광 발전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포탄 탄두의 우수한 강철로 만들어진 칼은 내구성과 금문도에서만 살 수 있는 포탄으로 만든 칼이라는 기념성으로 인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중화요리로 유명한 쉐프인 이연복 쉐프가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하면서 방송에서 보여준 적이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중식도. 아주 묵직한 칼. 이연복 쉐프도 금문칼을 쓰고 있다고 한다. 타이베이 여행시에도 금문고량주 판매 전문점이 많은데, 찾아볼 기회가 된다면 중식도를 사보는 것도 좋다.
⭐2023 Rti 팟캐스트 앙케트 조사
대만과 한국의 다양한 문화 이야기
백:
반세기 전 상상조차 하지 못하였던 변화 중의 하나가 바로 ‘진먼(金門-금문)의 역할이다. 60대 시민들에게 진먼은 늘 닿을 수 없는 먼 외딴섬으로 인식되어 왔었다. 같은 세대에게 ‘뤼다오(綠島-녹도)에 대한 인상을 말하라면 또 완연 다르지만 여전히 닿을 수 없는 먼 외딴섬이긴 하다. 그러나 이 두 곳의 이미지는 완연 달라서 하나는 국가와 국민을 지키는 군사기지, 1949년 이후 중화민국의 최전선이고, 다른 하나는 그 시대의 양안간 첨예한 대치로 인한 국가 안보와 집권자가 통치하는 데 편리하도록 국민의 사상을 통제하며 강압적인 정책으로 국민 자유를 박탈하였던 시대의 이른바 ‘감옥’이 소재한 곳인데 일반 범죄자보다는 이른바 ‘사상범’을 그곳에 가뒀었다.
오늘은 방송에서도 자주 언급하는 진먼에 대하여 조금 더 이야기를 나눠본다.
노:
대만의 대표적인 특산품으로 말하자면 진먼고량주를 들 수 있다. 금문 고량주에 대해 이야기하려면 우선 금문에 대해 이야기해야한다. 많은 사람들이 대만은 대만 본섬만 생각을 하는데, 뜸금없게도 중국의 한 귀퉁이에 금문이라는 섬이 있고, 이 섬이 바로 대만의 땅.
금문은 면적 151제곱킬로미터로 울릉도 두배 정도의 땅, 인구는 13만명. 가까운 대륙의 샤먼시와는 불과 10km 떨어진 섬. 타이완 섬과는 200km 떨어진 곳. 실제로 거의 중국 본토이기 때문에 인민해방군과 중화민국군간의 치열한 전투가 벌어졌던 곳.
1949년 국공내전 막바지 당시 밀리고 밀리던 중국 국민당 측의 최후의 방어선이 되면서 세계의 주목을 받게 되었다. 1949년 국공내전 말기에 중국 공산당 측에서 상륙대를 밀어넣었다가 1949년 10월 24일부터 10월 26일 사이에 벌어진 고령두(古寧頭) 전투에서 죽음을 각오한 중화민국 국군이 필사적으로 저항, 인민해방군을 이겨 대륙으로 몰아내는 데 성공한다. 이 지역은 대만과 같이 계엄령이 내려졌지만 민정 체제였던 타이완 섬의 다른 지역과 달리 직접 군정이 실시되었다.
원래 중국은 타이완 본섬까지 정복할 계획. 대표적으로 1950년 5월에 하이난섬을 중국이 공격, 중화민국국군의 저항에 중공군이 1만명 가량 희생이 되었지만, 결국 중국이 하이난섬을 점령. 중국은 대만섬을 점령하려고 하는데, 김일성이 먼저 남침을 시작하는 바람에 기회를 놓쳤다. 6·25 직전까지 중국은 대만 주변 섬을 대부분 점령했고 대만섬 공격 날짜까지도 거론되는 상황이었다. 그러나 6.25를 통해 미국의 대만 정책도 완전히 달라졌고, 중국도 대만을 공격할 여유가 없어져버렸다.
하여튼 인민해방군은 1958년에 진먼섬에 다시 47만발의 포탄을 쏟아부으면서 진먼 포격전을 했는데, 인민해방군 공군과 중화민국 공군 간의 공중전까지 벌어졌었다. 당시 중화민국이 금문을 지키는데 성공.
대만 전역에는 금문고량주를 파는 별도의 매장들이 있는데, 여기에는 고량주와 함께 금문의 다른 특산품을 함께 판매를 한다. 특이하게 칼을 같이 판다. 왜냐? 금문에는 하도 포탄이 많이 떨어지다보니, 칼이 또 특산품이다. 포탄 껍질로 칼을 만들기 시작했다고 하는데, 지금도 요리에 쓰는 칼을 많이 만든다. 진허리강다오 공장(金合利鋼刀廠). 1937년에 창업한 곳인데, 중국에서 쏜 포탄의 탄피를 녹여서 그것으로 칼을 만들고 있다. 포탄 1발로 약 60개의 칼을 만들 수 있다고 한다. 토치로 포탄에서 칼 한 개를 만들 양만큼의 쇠 조각을 떼어내고, 이것을 풀무에 넣고 달궈서 두들겨서 칼의 형태를 잡는다. 포탄의 철은 일단 일반 철보다 재질이 좋고 밀도가 정확하다고 한다. 그래서 3대가 쓸 수 있는 칼이라는 명성.
금합리제도창(金合利製刀廠)은 1958년 8.23 포격전 후 금문도에는 10만 명 이상의 군인들이 정착하게 되면서 대검, 군인 식당과 일반 가정의 부엌칼 등 엄청난 양의 칼이 필요하게 됐다. 수요를 충당하기 위해 섬 전체에 버려진 포탄 탄피를 찾아 모으고 칼을 만드는 재료로 사용했다. 1963년에는 매장을 냈으나 1960년대부터 1980년대까지 금문도는 개방되지 않아 관광객들에게 판매하는 것은 없었고, 금문도에서 군인으로 근무했던 사람들이 고향으로 되돌아갈 때 기념품으로 사가는 정도에 그쳤다. 1992년 군 통제가 해제되고 나서야 금문도는 관광 발전의 새로운 시대에 접어들었다. 포탄 탄두의 우수한 강철로 만들어진 칼은 내구성과 금문도에서만 살 수 있는 포탄으로 만든 칼이라는 기념성으로 인해 관광객들에게 큰 인기를 끌기 시작했다.
몇 년 전에 중화요리로 유명한 쉐프인 이연복 쉐프가 자신의 사무실을 공개하면서 방송에서 보여준 적이 있다. 사각형에 가까운 중식도. 아주 묵직한 칼. 이연복 쉐프도 금문칼을 쓰고 있다고 한다. 타이베이 여행시에도 금문고량주 판매 전문점이 많은데, 찾아볼 기회가 된다면 중식도를 사보는 것도 좋다.
⭐2023 Rti 팟캐스트 앙케트 조사