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예인 비사(祕史)

02. 오입쟁이들을 등친 조방꾼. 이중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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여기 또 한명의 조방꾼이 있다. 앞서 소개한 최가가 신의와 침묵으로 사람들의 인정을 받았다면 그는 또 다른 측면에서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그 역시 최가처럼 기생들의 기둥 서방인 조방꾼이다. 단순한 조방꾼이 아니라 그들의 우두머리라고 불렸던 것으로 봐서는 상당한 수완가였던 모양이었다. 어느 날, 그가 자신의 단골손님에게 은밀하게 얘기했다.
“제가 이번에 정말 아름다운 기생을 데려왔습니다. 가히 경국지색이라고 할 만한데 열 냥만 내시면 그 기생과 달콤한 하룻밤을 보낼 수 있게 해드리겠습니다.”
이중배의 얘기에 귀가 솔깃한 손님은 냉큼 열 냥을 내놨다. 그리고 약속한 날, 잔뜩 기대감을 품은 채 기방에 찾아갔다. 과연 이중배의 말대로 은은한 등잔불이 켜진 방 안에는 곱게 차려입은 여인이 다소곳하게 앉아있는 게 보였다. 그런데 문제는 그 말고도 아홉 명의손님들이 와 있었다는 것이다. 지금으로서는 이해하기 어렵지만 조선시대 기방은 돈만 있다고 드나들 수 있는 곳이 아니었다. 복잡하고 우스꽝스러운 기방만의 예법을 따라야만 했는데 예를 들면 양반집 자제라고 해도 기방에 드나들 때는 그 집 청지기라고 둘러대야만 했다. 체면과 예법이 쾌락의 현장인 기방까지 파고든 셈이다. 따라서 선금 열 냥을 낸 손님은 아무 말도 못하고 다른 방해꾼들이 돌아가기만을 기다렸다. 그런데 얄밉게도 다른 손님들은 일어날 생각을 안 하는 것이다. 속절없이 시간이 흘러가는 동안 조방꾼 이중배도 계속 드나들면서 혀를 차면서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그걸 본 손님은 그가 다른 사람을 쫓아내고 싶어 하지만 기방의 예법 때문에 어쩔 수 없는 것이라고 넘겨짚었다. 그렇게 기묘한 대치상황이 밤새 이어지고 새벽이 밝아왔다. 그러자 이중배는 싸구려 술과 나물을 대접하고는 날이 밝았으니 돌아가는 게 좋겠다고 얘기했다. 체면 때문에 거금 열 냥을 날린 손님은 빈손으로 터덜터덜 집으로 돌아오고 말았다. 당사자들은 꿈에도 몰랐지만 사실 거기 모인 열 명의 손님들은 모두 이중배가 열 냥씩 돈을 받은 손님들이었다. 조방꾼으로 오랫동안 일했던 그는 기방의 풍습을 이용해서 무려 백 냥이나 되는 돈을 갈취한 것이다. 이중배의 사기극은 두고두고 사람들의 입에 오르내렸다. 이중배가 어떤 마음으로 자신의 경력에 치명타가 될 수 있는 사기극을 꾸몄는지 짐작이 가지 않는다. 백 냥이라는 돈도 조방군들의 우두머리라는 얘기를 듣는 그에게는 거금은 아니었으리라. 어쨌든 그의 계획은 멋지게 성공했고 사람들 사이에서 소문이 자자했다. 어떻게 보면 범죄나 다름없는 짓인데 사람들은 왜 비난 대신 칭찬을 하면서 이야기를 퍼트렸을까? 기방에 드나드는 손님들을 오입쟁이라고 불렸다. 주로 독점유통으로 큰돈을 번 경강상인들이나 역관 같은 중인들, 그리고 귀족화된 양반들인 경화세족(京華世族)의 자제들이었다. 조선 후기의 백성들은 점점 가혹해지는 수탈과 거듭된 흉년에 큰 고통을 받았다. 하지만 그 와중에 많은 돈을 번 상인들과 권력을 이용해서 부를 축재한 경화세족들은 호화로운 생활을 즐겼다. 따라서 18세기와 19세기의 한양은 화려한 유흥문화가 꽃을 피우는 동시에 길거리에 굶주리는 사람이 구걸을 하는 극과 극의 도시였다. 하루 한 끼를 먹기도 어려운 사람들에게는 미녀와의 하룻밤을 위해 열 냥이라는 거금을 아낌없이 쓰는 부자들이 더 없이 미웠을 것이다. 그렇기 때문에 이중배의 사기행각은 사람들에게 비난을 받는 대신 전설로 남게 되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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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예인 비사(祕史)By 스마트 미디어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