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시점에서는 이해가 가지 않겠지만 조선시대 무당은 백성들의 의사와 멘토 역할을 해줬던 친근한 존재다. 당장 나라에서도 흉년이 들면 무당이나 장님으로 하여금 비를 내리게 해달라는 제사를 지내게 했다. 과학기술이 발달한 오늘날에도 여전히 사람들은 점을 치고 있으니 조선시대에는 어땠을지 짐작이 간다. 백성들도 주변에 해괴한 일이 벌어지거나 가족이 갑자기 아프면 무당을 찾아가서 굿을 했다. 하지만 나쁜 혼령이 달라붙었다면 굿으로도 해결이 되지 않았다. 이런 상황이 오면 귀신 잡는 퇴마사 엄 도인이 나섰다. 강원도 영월 출신의 그는 본래 무사였다고 전해진다. 하지만 천문을 읽고 풍수에 해박했으며 관상도 잘 봤다고 한다. 한 마디로 무사라기보다는 역술인이자 지관 쪽에 가까웠다. 하지만 이런 재주들을 모두 압도하는 진짜 재능이 있었으니 바로 귀신을 잡는 것이었다. 정체모를 귀신에게 괴롭힘을 당하던 백성들은 그에게 SOS를 치면 엄 도인은 관을 쓰고 도복을 입은 채 현장에 출동했다. 그리고 칼을 휘둘러서 귀신과 싸웠는데 궁지에 몰린 귀신을 항아리 속에 몰아넣고 붉은 부적으로 입구를 봉해버렸다. 그리고는 먼 바다에 던져버렸다. 잔챙이 귀신들은 귀찮게 항아리 안에 넣고 봉하지 않고 그냥 씹어 먹어버렸다. 그러면 입술에서 붉은 피가 흘러나왔다고 한다. 그런데 지금까지의 설명을 들으면 나이든 분들은 어디서 봤더라하고 고개를 갸웃거릴 것이다. 80년대 우리나라에서 큰 인기를 끌었던 홍콩영화인 ‘강시선생’이나 ‘영환도사’에서 나온 퇴마사가 딱 이런 모습이었다.
우리나라 귀신의 대표 격인 장화 홍련은 단지 놀래 켜서 죽였을 뿐이지 절대 사람들을 해치지 않았다. 그리고 배짱 두둑한 사람을 만나면 억울한 사연을 하소연하고 조용히 사라질 뿐이었다. 귀신이 되었다고 사람을 해치거나 바로 복수를 하는 대신 공권력에 호소하는 준법정신을 지킨 것이다. 그리고 간혹 나쁜 귀신이 나타난다고 해도 무당이 출동해서 굿을 하면서 사연을 들어주고 달래주면 물러갔다. 하지만 엄 도인은 칼을 들고 나타나서 귀신과 싸웠고, 씹어 먹기까지 했다. 갑자기 귀신들이 사나워지기라고 한 걸까? 아니면 중국에서 나쁜 귀신들이 건너왔던 것일까? 그것도 그렇지만 강원도 영월이라는 외딴 곳에 살던 엄 도인은 청나라로 유학을 갔다 온 것 같지는 않은데 대체 어디서 이런 퇴마술을 배웠을까? 궁금한 점이 한 두 가지가 아니지만 아쉽게도 단서가 될 만한 기록들은 보이지 않는다. 엄 도인에 대한 기록이 남겨져있는 추재기이는 조수삼이 젊은 시절 직접 봤거나 소문으로 들은 것들만 엄선했다. 따라서 엄 도인 역시 한양에서 활약을 했거나 혹은 그 소문이 흘러 흘러 조수삼의 귀에까지 들어갔을 것이다. 어느 쪽이든 낯선 복장을 하고 칼을 휘두르며 귀신과 싸우던 엄 도인은 아마도 몹시 색다르게 보였을 것이고 그것 때문에 큰 사랑을 받았다. 기괴하고 과격해보이기는 하지만 어쨌든 귀신들을 물리쳐주는 고마운 존재였으니까 말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