요즘 ‘덕후’라는 말이 유행입니다. 일본어인 오타쿠(御宅)를 우리 식으로 발음한 ‘오덕후’의 줄임말이라는데요. 원래는 집이나 댁의 높임말인데 그 뜻이 바뀌어 집안에 틀어박혀 취미생활에 몰두하는 사람을 지칭했답니다. 요즘엔 특정 분야에 몰두해서 취미생활을 하는, 좋은 의미로 쓰입니다. 그런데 이런 ‘덕후’들은 왕조시대에도 있었습니다. 물론 예전에는 괴상한 취미라는 의미에서 ‘벽(癖)’이라 했습니다. 찾아보니 생각보다 많았습니다. 땅을 너무도 좋아하는 사람을 ‘전벽(田癖)’ ‘지벽(地癖)’이라 했고, 남을 고소 고발하는 게 취미인 자를 ‘소벽(疏癖)’ 이라고 했습니다. 책을 너무 좋아하면 ‘전벽(傳癖)’ 혹은 ‘서음(書淫)’ 이라 했으며, 술과 시에 탐익하는 사람을 ‘주벽’ ‘시마(詩魔)’라 했습니다. 물론 돈을 너무 좋아하는 자는 ‘전벽(錢癖)’이라 했지요. 그 뿐입니까. 어떤 이는 피부에 난 ‘부스럼 딱지 먹기’가 취미라 해서 ‘창기벽(瘡痂癖)’이라 했습니다. 그런데 재미있는 것은 이와같은 ‘벽’이 없는 사람을 두고 ‘재미없고 인간미 없는 사람’이라고 했다는 겁니다. 박제가와 허균 같은 분의 이야기입니다. 두 분 뿐 아니라 이규보, 이덕무, 정약용, 김정희 등도 모두 당대의 ‘덕후’였습니다. ‘덕후’가 우대받던 시대, 자 이제 ‘고려·조선 덕후들의 요절복통 덕질’을 알아보려 합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팟캐스트 118회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