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2006년엔 또하나 흥미로운 유구가 확인됐다.
절터 서쪽 부속건물터에서 깊이 4m, 폭 10m 이상의 돌 구조물이 발굴된 것이다. 처음엔 음식저장고이거나 창고인줄 알았다.
그러나 바닥에 깔린 흙덩이를 분석해보았더니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그 흙에서 기생충알이 다수 확인된 것이다. 흙 1g당 흡층과 회충알이 30개 이상 나왔다. 이것은 흙이라기보다는 대변성분에 가까웠다.
제대로 발굴해보니 공동화장실, 즉 해우소의 규모는 길이 14m, 폭 2.8m, 깊이 3.8m였다.
구덩이 내부의 사면은 돌벽이었고, 바닥은 박석으로 깐 얼개가 특징이었다. 구덩이의 둘레에는 12개의 기둥자리가 발견됐다. 구덩이 내부는 발굴당시 무너진 기와더미로 덮여있었다.
추론하면 대형 구덩이 위에 마루 널판을 깔고 기둥과 기와 지붕을 올려 화장실을 만들어 사용한 것이 분명하다. 화장실 유구 북쪽으로는 수조가 설치되었는데, 뒤처리용이었을 가능성이 짙다.
2000년대 초반 발굴 당시 회암사를 2~3차례 답사했던 필자는 최근 15년 만에 다시 찾아갔다. 깨끗하게 정비되어 있었다. 절터는 발굴 현장 그대로 보전되어 있었다. 화장실 유구는 필자가 답사할 때는 없었다.
각설하고 관람객들은 지금 마치 고고학자의 기분으로 회암사 유구를 돌아볼 수 있다. 조선을 개국한 태조 이성계와 부인 강씨, 그리고 무학대사 등의 체취를 맡을 수 있고, 희대의 여걸이라는 문정왕후와 승려 보우의 이야기도 더듬어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