근자에 혜원 신윤복의 ‘미인도’가 보물 1973호로 지정되었다는 소식을 듣고 한가지 근본적인 의문이 들었다.
‘미인도’는 과연 신윤복이 붙인 제목인가. 독자의 입장에서 각종 자료를 들춰보니 그게 아니었다. 후대에 붙여진 제목이었다. 가만보면 배경없이 그려진 여성의 전신 그림을 ‘미인도’라 했다. 그러나 이것은 공정하지 못한 제목이다. 생각해보라. 고려·조선시대의 남자상을 ‘미남도’라 하는가. 누구인지 모르면 그림의 주인공을 애써 찾아 ‘○○의 초상화’라 굳이 이름 붙인다. 그러나 여성의 그림은 어떤 경우 ‘특정한 인물의 초상화’ 인 것 같은데 주인공을 찾거나 적당한 이름을 붙이지 않고 그냥 ‘미인도’라 쉽게 명명한다. 이 경우 어떤 현상이 빚어지는가. 여성 그림은 그저 ‘미인을 감상하는’ 남성의 눈요깃감에 그친다. 개별 작품의 독자적인 지위나 성격을 잃어버리고 그냥 ‘미인’이라는 ‘아름다운 여성의 일반적 범주’에 갇히고 만다. 다시 말하면 여성을 그린 그림은 그저 ‘남성의 완상용’이 되고 만 것이다.
신윤복의 ‘미인도’는 어떨까. 다른 구체적인 이름을 붙이면 어떨까. 일단 신윤복이 그린 ‘이른바 미인도’의 모델을 상상해보는 것도 흥미롭다. 혹시 신윤복이 가슴 속에 묻어둔 사랑하는 이가 아니었을까. 혹자는 아예 신윤복을 기생의 ‘기둥서방이었다’고 보기도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