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83회 판문점의 어제와 오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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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51년 7월8일과 10일 유엔군과 공산군이 협상테이블에 마주 앉았다. 1년을 훌쩍 넘긴 한국전쟁을 끝내기 위한 휴전회담을 시작된 것이다.
7월8일 열린 예비회담(광문동 민가)과 10일 본회담(내봉장)은 모두 개성에서 열렸다.
개성이 한국전쟁 전의 분단선인 38도선상의 도시라는 점이 감안됐다. 즉 1951년 6월30일과 7월1일 유엔군측이 “휴전을 위한 예비회담을 원산비행장이나 개성~임진강 사이의 국도상에서 개최하고 싶다”고 제의하자 공산군측은 “그럼 회담장소를 38도선 상의 개성으로 하자”고 회답했다.
개성이 한국전쟁 이전에는 38도선상에 있었기 때문에 회담장소로 낙점된 것이었다.
그러나 개성지역이 그 당시 공산군측의 치하에 속했다는 게 두고두고 발목을 잡았다.
〈이기환 경향신문 논설위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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