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190회 끔찍한 상상…도굴왕 가루베가 무령왕릉 찾았다면?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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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아주 나쁜 놈이었다. 송산리 6호분을 완전히 파먹은 자였다. 영원히 잊지 못할 악질 도굴꾼이요, 유물약탈자였다. 일본인 사회에서도 용서받을 수 없는….”
일제강점기 충남 공주를 무대로 활동한 일본인 가루베 지온(輕部慈恩·1897~1970)에 대한 악평이다. 가루베가 과연 어떤 인물인데, 이런 극악한 평에 시달리는 것일까.
시계를 90여년 전으로 되돌려보자.
■공주는 아마추어의 신천지였다
가루베는 와세다대(早稻田大)에서 국어·한학을 전공했다. 역사 및 고고학과는 관련이 없는 비전문가였던 것이다.
그러나 “평소 낙랑 및 고구려에 대한 관심이 남달랐다”는 가루베는 식민지 조선을 찾아 1925년 3월 평양 숭실전문대에서 교편을 잡았다. 하지만 이미 낙랑·고구려 유적은 너무도 유명해져서 비전문가가 취미생활로 접근할 수 없는 ‘넘사벽’이었다. 결국 충남 공주로 쫓기듯 내려왔다.
공주고보에 부임한 가루베의 담당과목은 역사가 아닌 국어(일본어)였다. 사실 평양의 경우 낙랑고분 발굴에 혈안이 되어 있던 일제 관학자들의 영향력 때문에 끼어들 틈이 없었다. 그런 의미에서 비전문가인 가루베에게 공주는 신천지나 다름없었다. 부여와 함께 백제의 옛 도읍지였던 공주는 그때만 해도 일제의 주목을 받지 못했던 것이다. 이 틈새를 가루베가 비집고 들어갔다. 가루베에게 웅진백제는 ‘블루오션’이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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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경향신문]이기환의 흔적의 역사By 경향신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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