TV도 없고 영화관도 없던 조선시대에는 뭐든 라이브로 봐야 했다. 마찬가지로 무대가 없었던 예술가들 역시 길거리에서 직접 관객들을 상대했다. 그러니까 길거리에서 개그콘서트가 열리고 가요무대가 펼쳐졌다고 할 수 있겠다. 이들은 오늘날처럼 막대한 부와 성공은 못 누렸지만 오늘날에 버금가는 사랑을 받았다. 그 중에서도 재미있는 이야기를 들려주는 재담꾼들은 많은 인기를 누렸다. 단순히 말을 웃기게 한다거나 잘 했다는 수준을 넘어서 관객들의 속을 시원하게 해주는 풍자를 곁들였기 때문이다. 김 옹은 재담꾼들 사이에서도 꽤 유명했는데 조수삼이 그를 이야기 주머니라고 부른 것으로 봐서는 다양한 레퍼토리를 가지고 있었던 것으로 보인다. 이름 대신 노인이라는 별칭이 붙었으니 아마도 꽤 나이가 든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그의 해학과 풍자를 보면 세상사를 깊이 꿰뚫고 있던 학문적 지식을 갖춘 인물이라고 보인다. 그의 메인 레퍼토리는 황새결송이라는 이야기였다.
이야기는 경상도의 어느 부자가 먼 친척에게 재산을 떼어달라는 협박을 받고는 형조에 소송을 하면서 시작된다. 부자는 당연히 공정한 판결을 기대했지만 친척에게 뇌물을 받은 형조의 관리는 부자에게 패소판결을 내려버리고 만다. 말도 안 되는 판결에 재산의 반을 잃게 된 부자는 형조의 관리들에게 마지막으로 들려줄 이야기가 있다면서 입을 연다. 어느 날 산속에서 꾀꼬리와 뻐꾸기와 따오기가 서로 자신이 목소리가 예쁘다고 자랑을 하다가 시비가 붙고 말았다. 그래서 새들은 숲 속에 사는 황새에게 찾아가서 누구의 목소리가 가장 예쁜지 결정을 내려달라고 부탁했다. 정상적이라면 꾀꼬리와 뻐꾸기 중 하나가 뽑혀야겠지만 황새는 의외로 따오기의 목소리가 가장 예쁘다는 결정을 내린다. 사실은 목소리가 가장 쳐졌던 따오기가 황새에게 은밀하게 뇌물을 바쳤던 것이다. 경상도 부자는 하물며 황새도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내리는데 하물며 사람들이야 오죽하겠느냐고 얘기하고는 물러난다. 졸지에 황새만도 못한 존재가 되어버린 형조의 관리들이 부끄러움에 고개를 못 들었다. 말할 나위 없이 뇌물을 받고 그릇된 판결을 내리는 관리들을 풍자하는 이야기다. 이 이야기는 삼설기라는 소설집에 수록되어서 오늘날까지 전해져오는데 누가 지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하지만 부당하고 억울한 일을 겪어 본 당대 사람들에게는 낯설지 않은 이야기였으리라. 이렇게 김 옹은 모여든 사람들 앞에서 구성지게 이야기를 풀어내면서 큰 인기를 끌었다. 단순히 웃기는 수준을 넘어서서 시대의 잘못을 토로하고 부패한 관리를 비꼬는 통쾌함을 선사한 것이다. 사람들은 익살스럽게 얘기하는 김 옹에게 아낌없는 박수갈채를 보냈다.
풍자란 시대와 맞서는 웃음이나 다름없었다. 풍자할 것이 많은 세상도 문제가 있지만 그런 풍자조차 마음 놓고 못하는 세상은 더더욱 큰 문제가 있다. 조선의 민중들은 관리들의 가혹한 수탈과 부당한 판결에 깊은 상처를 입었다. 김 옹은 그런 민중들의 아픈 마음을 황새 결송을 통해서 웃음으로 달래주었다. 길거리에서 이야기를 들려주고 먹고사는 늙은 재담꾼인 김 옹이 당대는 물론 오늘날까지 기억된 이유도 여기에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