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예인 비사(祕史)

21. 침으로 스타가 되다. 백광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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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년에 TV로 방영되어서 큰 인기를 끈 사극 ‘마의 백광현’은 말을 고치는 수의사인 마의에서 일약 임금의 주치의인 어의가 되는 백광현의 성공담을 그렸다. 하지만 그는 단순히 성공한 의사로서 아니라 명의로서 백성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았다. 조희룡이 쓴 호산외기에는 백광현이 왜 백성들의 사랑을 받고 신의(神醫)라는 명칭을 뛰어넘은 태의(太醫)라고 불렸는지 자세하게 나와 있다. 마의는 왕실에서 쓰는 말과 수레, 목장을 담당하는 관청인 사복시에 소속되었는데 제일 낮은 품계인 종9품의 관리였다. 아무리 품계가 올라도 원칙상 종6품 이상은 불가능한 말단 관리인 셈이다. 하긴 사람을 고치는 의원들도 중인의 신분을 면치 못했던 조선시대에 말을 고치는 마의가 좋은 대접을 받았을 리는 없었다.
백광현은 풍채가 좋았지만 집안이 가난해서 낡은 옷을 입고 항상 남에게 뭔가를 빌려야만 했다. 그런 백광현을 업신여긴 무뢰배들이 종종 시비를 걸었지만 그는 화내거나 짜증내지 않고 웃어 넘겼다. 그가 어떤 과정을 거쳐서 마의가 되었는지는 알려져 있지 않다. 마의는 잡직이긴 하지만 상당한 기술을 요하는 직업으로서 아무나 할 수 있는 게 아니었다. 드라마에서는 사복시에 소속된 마의로 나오지만 호산외기나 실록에는 그런 얘기가 없다. 말을 고치는 일은 워낙 수요가 많아서 사복시 말고도 민간에서 일하는 마의들이 제법 되었는데 혹시 드라마에서처럼 우연찮게 스승에게서 비법을 배웠던 것일까? 아마 거리를 오가다가 어떤 계기로 말과 접하게 된 것이 아닌가 싶다. 다른 기록에는 본래 말을 타는 무사였다고 했으니 이것과 연관성이 있을지도 모르겠다. 어쨌든 마의로서 명성을 떨친 그는 어떤 계기로 인해서 사람들의 종기를 치료하게 되었다. 오늘날에는 거의 사라졌지만 조선시대의 종기는 사망률 1,2위를 다투는 무서운 병이었다. 그의 침이 종기에도 효과가 있다는 소문이 퍼지면서 차츰 찾아오는 사람들이 늘어났다. 체계적으로 의술을 배운 것이 아니었기 때문에 치료 중에 간혹 환자들을 죽이는 경우가 있었다. 하지만 좌절하지 않게 끝까지 노력한 덕분에 살려낸 환자들이 더 많아지게 되었다.
종기를 잘 치료한다는 그의 명성은 마침내 궁궐까지 들어가게 되었다. 그리고 현종의 종기를 치료한 공로를 인정받아 내의원 어의로 발탁되었다. 그 후로도 계속 승승장구하면서 숙종 때는 포천현감으로 임명되었고, 품계는 종1품 숭록대부에 이르렀다. 한 때 헐벗은 채 길거리를 배회하던 그가 마의를 거쳐 어의로서 최고의 영광을 누리게 된 것이다. 조선시대에는 명의로서 이름을 떨친 의원들은 적지 않았다. 하지만 임금과 왕실을 치료하는 어의로 활동해서 백성들에게 혜택이 주어지지 않거나 혹은 명성을 누리면 돈을 탐내는 모습들을 보였다. 하지만 백광현은 어의 정도 되면 돈 많은 양반들만 치료해도 충분했을 텐데 초심을 잃지 않고 항상 공손하게 환자들을 대했다. 요즘 말로 하면 초심을 잃지 않은 것이다. 그래서 병자가 청하면 신분에 상관없이 찾아가서 최선을 다해서 치료했다. 나이가 들고 귀한 몸이 되었다고 병자들을 외면하지 않은 것이다. 백성들은 낮은 자세로 환자들을 대하는 그에게 열광했다. 자신들 외에는 아무도 인정하지 않았던 사대부들도 다투어 그의 아름다운 일화를 남겼다. 그래서 종기에 걸린 사람들이 하나같이 그가 없으니 살아남기 어렵다고 한탄했으니 백광현은 죽고 나서도 오랫동안 기억된 것이다. 초심을 잃지 않고 낮은 자세로 환자들을 돌봤던 그야말로 사람들을 살리던 진정한 길거리 스타, 아니 영웅이 아니었나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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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예인 비사(祕史)By 스마트 미디어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