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발 중 49발 명중이 모두 10차례. 한번은 100발 쏘아 98발 명중….
이것은 이순신 장군이나 태조 이성계의 활 솜씨가 아니다. 문체반정을 주창한 문예 군주라는 정조 임금의 활쏘기 솜씨이다.
정조의 활쏘기 점수가 다름 아닌 〈정조실록〉에 아주 자세히 기록됐으니 거짓은 아닐 것이다.
〈정조실록〉을 보면 정조는 1792년(정조 16년) 10~12월 사이 춘당대에 출근하다시피 해서 활쏘기 행사를 벌인다. 왜 유달리 이 무렵에 집중된 것일까. 정조는 “과인이 활쏘기를 원체 좋아했고 그것이 가문의 법도여서 젊은 시절에는 즐겼지만 최근 10~20년 사이에는 거의 하지 않았다”면서 “그러나 1792년 10월12일부터 다시 시작했다”고 밝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