독립운동가 권오설 선생의 이름은 낯설다. 1919년 3·1운동을 계승한 1926년 6·10만세운동의 기획자이자 주도자인 선생인데도 그렇다. 왜일까. 바로 사회주의 독립운동가였기 때문이다.
권오설 선생은 1897년 퇴계 이황(1501~1570)의 학맥을 잇은 경북 안동의 가일마을에서 태어났다. 대구고등보통학교(경북고 전신)과 중앙고보, 경성부기학교 등을 차례로 중퇴한 선생은 1919년 고향으로 내려와 교육·청년·농민운동을 펼친다. 원흥학술강습소(원흥의숙)과 일직서숙을 열어 청소년들의 신식교육을 도맡았고, 가곡농민조합을 조직하고 풍산청년회를 창립했다. 1923년부터는 풍산소작인회 집행위원이 되어 소작운동까지 벌였다.
이것이 권오설 선생에게는 새로운 도약이었다. 소작운동을 벌이려면 인재가 필요했다. 선생은 바로 풍산학술강습회를 개설했는데, 안동지역에서 약 200명 정도가 수강했다. 권오설의 지도를 받고 서울로 유학한 권오운과 권태성 등은 훗날 6·10만세운동의 주역이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