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예인 비사(祕史)

24. 기부천사. 조석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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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시대에는 갓과 망건은 필수품이었다. 망건은 틀어 올린 상투를 고정시키기 위해 이마에 감싸는 일종의 두건이었고, 갓은 상투를 틀고 망건을 두른 머리에 쓴 모자의 일종이었다. 행세깨나 하는 양반들은 물론이고 중인들도 망건을 두르고 갓을 썼다. 갓과 망건 모두 말총이나 머리카락으로 만들었는데 만들기가 몹시 까다롭고 귀했기 때문에 다들 애지중지했다.
조석중은 바로 갓이나 망건을 만드는 일을 하는 장인이었다. 지금은 갓과 망건을 만드는 일은 별개의 일로 취급받지만 당시에는 갓을 만들던 사람이 망건도 만들었던 것으로 보인다. 그는 한 곳에 머물지 않고 전국을 떠돌았는데 그렇게 해도 먹고 살만큼 일거리가 있었다는 얘기가 된다. 조석중의 외모는 몹시 인상적이었는데 키가 크고 눈썹이 짙으며 배가 불룩 튀어나왔다. 손재주가 좋아서 하루에 망건 하나를 만들고, 사흘이면 갓 하나를 완성했다고 한 걸 보면 꽤 손이 빠른 장인이었던 것으로 보인다. 올챙이배를 하고 송충이 눈썹에 키가 큰 그는 대번에 사람들의 눈에 띄었을 것이다. 조석중은 술을 즐겨 마시는 편이었고, 배포도 커서 남과 잘 어울렸다고 전해진다. 그리고 친구와의 약속을 몹시 소중하게 여기는 인물이었다. 이 글을 읽는 여러분 곁에서도 어렵지 않게 찾을 수 있는 술 좋아하고 마음씨 좋으며 오지랖 넓은 스타일로 보인다. 그런 그를 조선의 길거리 스타로 완성시켜 준 것은 다름 아닌 ‘기부’였다. 조석중은 갓과 망건을 팔아서 번 돈으로 가난한 이웃을 도왔다. 그렇다고 그가 풍족하게 산 것은 아니었다. 집이 없는 떠돌이였던 그는 갓과 망건을 만드는 도구와 옷가지들이 든 보따리를 들고 다녔다. 아무리 전국을 떠돌면서 일을 한다고 해도 돈을 벌면 편안하게 쉴 수 있는 집을 사고 싶어 하는 건 당연한 일이다. 그리고 발품을 팔지 않고도 일을 할 수 있는 작업장도 하나 얻는 게 보통 사람들의 꿈이자 계획이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자기 대신 남을 위해서 아낌없이 돈을 썼다. 이렇게 기부를 한다고 해도 누가 알아주지는 않았을 텐데 참으로 대단하다는 말 밖에는 나오지 않는다. 가끔씩 들려오는 훈훈한 소식들 중 가장 눈에 띄는 건 자신도 어렵고 힘들면서 더 어려운 이웃들을 위해 기부하는 사람들의 얘기다. 배고픔을 겪어봤기 때문에 타인에 고통을 그냥 못 지나치는 것일까? 조석중도 그런 인물이었던 것 같다. 아마 누군가는 그에게 쓸데없는 짓 하지 말고 착실하게 돈을 모으라고 충고했을 것이다. 하지만 그는 남을 돕는 일을 멈추지 않았다. 자신에게 써야하고 마땅히 누려야 할 것들을 줄이고 희생하면서 말이다. 조선시대에는 일반 백성이 남을 돕는 구휼을 하면 신분을 올려주거나 명예직이긴 하지만 관직을 주기도 했다. 하지만 조석중은 그런 혜택에는 눈도 돌리지 않았다. 성격도 화끈하고 술도 좋아하는데다가 남도 잘 도운 조석중이야 말로 진정한 의미의 스타가 아니었을까 싶다. 그는 농담 삼아서 자신을 현세에 나타난 미륵불인 재세미륵불이라고 지칭했는데 도움을 받은 사람들에게는 정말 그런 존재였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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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예인 비사(祕史)By 스마트 미디어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