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날 황제의 칙명을 받들어 빈관에 머물고 있던 홍관을 찾은 이들이 있었다. 이들은 송나라 한림대조 양구와 이혁이었다. 홍관이 김생의 ‘행초(行草·행서와 초서)’ 한 권을 보여주자 두 사람은 깜짝 놀랐다. “야 오늘 여기서 왕희지의 글씨를 보게 될 줄은 미처 몰랐네.” 두사람은 감탄사를 연발했다.
그러자 홍관은 손사래를 치며 “이것은 왕희지의 글씨가 아니라 신라 사람 김생이 쓴 것”이라고 고쳐주었다. 하지만 양구와 이혁은 ‘우릴 놀리냐는 듯’ 빙긋 웃으며 말했다.
“에이, 놀리지 마세요. 천하에 왕희지를 빼놓고 어찌 이런 신묘한 글씨가 있습니까. 말도 안됩니다.”
홍관이 “아니다 진짜 김생의 글씨다”라고 몇번을 말했지만 두사람은 ‘농담하지 마라’는 듯 웃어넘겼다. 〈삼국사기〉 ‘열전·김생전’이 소개한 일화이다. 중국인들이 김생의 글씨를 보면서 ‘왕희지의 재림’이라고 놀라면서도 끝내 신라인 김생의 글씨를 인정하지 않았다는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