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응? 이거 뭔가 글씨 같은데?”
1988년 3월 20일 경북 울진 죽변면 봉평 2리 마을 이장 권대선씨는 길옆 개울에 처박혀있던 돌을 유심히 바라보고는 고개를 갸웃거렸다. 아무리 봐도 돌에 새겨진 문양은 글씨 같았다. 이 돌은 두 달 전인 1월 20일 주두원씨 소유 논에 거꾸로 박혀있다가 포크레인 작업으로 뽑아내어 길옆 개울로 버린 것이었다. 그러나 돌의 문양이 글씨라는 것을 확신한 권대선 이장은 즉시 죽변면사무소와 울진군청에 신고했다. 이것이 유명한 울진 봉평비(국보 제 242호)의 발견 이력이다.
봉평비는 앞면에만 모두 10행 397자(혹은 398자)이며, 비의 중간부분 일부를 빼면 대부분 판독할 수 있었다. 이 비석은 한마디로 판결문이다.
1500년 전의 역사를 찾아낸 이들이 고고학자도, 역사학자도 아닌 평범한 농부들이었다. 그들이 아니었다면 생생한 신라인들의 ‘삶의 현장’은 쓸모없는 돌로 버려졌거나 산산조각 났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