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명해지기 위해서는 실력뿐만 아니라 행운을 비롯한 여러 가지가 필요하다. 그 중에는 끈기도 필요하다. TV속 기인열전에 등장하는 기인들 대부분은 뭔가를 굉장히 오랫동안 한 사람들이다. 일반인들은 그런 사람들을 존경과 감탄의 눈으로 바라보기 마련이다. 이번에 소개할 조선의 길거리 스타는 뭔가 대단한 것을 이루거나 쌈박한 재주를 가졌던 사람은 아니다. 오히려 얘기를 듣고 나면 ‘이런 지지리 궁상...’이라는 말이 자연스럽게 나올법한 인물이다. 그는 다른 스타들과는 달리 한 게 거의 없었다. 단지 봄과 가을, 화창한 날 잔치가 열리고 풍악이 울려 퍼지면 어느 샌가 나타나서 맞은편 산꼭대기 위에 우두커니 앉아있었다. 잔치에 껴서 실력을 뽐내거나 하는 것이 아니라 그냥 산꼭대기에 앉아있는 게 전부였다. 잔치 구경을 하고 싶었던 것일까? 망원경이 없던 시절이니 산꼭대기 위에 올라가면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을 것이다. 그리고 그는 수 십리 떨어진 곳에서 벌어진 잔치판에도 어김없이 모습을 드러냈다. 그렇게 항상 모습을 드러내자 이제는 그가 보이지 않으면 잔치를 연 사람들이 섭섭해 하거나 걱정을 할 지경이 되었다. 그렇다면 그는 대체 누구였을까? 조수삼은 그가 몰락한 양반 홍생이라고 설명했다. 여기서 생은 생원을 뜻하는 말이지만 실제 생원시에 합격 했다기보다는 그냥 관례적인 높임말로 보인다. 그의 진짜 이름은 알려져 있지 않지만 사람들은 산꼭대기에 앉아있다고 해서 홍봉상(洪峯上)이라고 불렀다. 홍씨 성을 가진 이 양반은 왜 집에서 글을 읽지 않고 남의 잔치판이 내려다보이는 산꼭대기에 앉아있었을까?
조선 후기 들어서면서 몰락한 양반들이 하나둘씩 나타났다. 잇단 전쟁과 당파싸움의 여파 때문인데 조선의 양반은 확고부동한 신분계층이 아니었다. 물론 경화세족(京華世族)이라고 불리는 귀족화된 양반집단도 등장하지만 외척 집안인 안동김씨를 포함한 극소수에 불과했다. 별다른 기반이 없고, 2~3대에 걸쳐서 과거합격자를 배출하지 못하면 양반의 지위를 유지하기 어려웠다. 그렇게 되면 길거리를 전전하면서 구걸을 하는 수밖에는 없었다. 홍봉상 역시 그런 부류로 보인다. 잔치판에 기웃거리면 그나마 먹을 것을 구하기 쉬웠기 때문이다. 하지만 마지막 남은 양반의 자존심상 직접 구걸을 하지는 못했던 것이다. 그가 선택한 차선책은 잔치판이 훤히 보이는 산꼭대기에 앉는 것이었다. 그런 기구한 사연이 있었지만 어쨌든 산꼭대기에 앉아서 내려다보는 그의 존재는 잔치에 빠져서는 안 될 이벤트가 되어버렸다. 그가 나타나면 잔치판의 기생이나 악공, 손님들은 다 같이 외쳤다.
“저기 봐! 홍봉상 어르신이 나타났다!”
그리고 사람들을 시켜서 술과 음식을 보냈다. 그러면 홍봉상은 굶주린 배를 채우고 조용히 사라졌다. 홍봉상은 어떤 의미에서는 당대 조선의 아픔이나 어둠을 상징적으로 보여준다. 자존심과 배고픔 사이에서 그는 산꼭대기에 앉은 것을 선택했고, 사람들은 그의 등장에 환호를 보냈다. 존재감 그 자체로 메시지를 보낸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