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연예인 비사(祕史)

27. 시대를 풍자한 재담꾼2. 김중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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딱히 오락거리가 없던 조선시대에는 돈이 좀 있으면 기방에 가서 기생들과 어울리거나 술을 마시면서 놀 수밖에는 없었다. 하지만 하루 벌어서 하루 먹고 살기도 힘든 대다수의 백성들에게는 그런 유흥은 그림의 떡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백성들에게 길거리에서 펼쳐지는 공연들은 가뭄의 단비 같은 존재였다. 악기를 연주하는 악공들도 있었고, 소설의 내용을 들려주는 전기수들도 있었지만 가장 사랑을 받은 건 역시 익살과 풍자를 곁들인 재담꾼들이었다. 뇌물을 받고 잘못된 판결을 거리낌 없이 내리는 관리들을 비꼬는 황새결송을 메인 레퍼토리로 하는 김 옹이 큰 인기를 끌었다면 정조 때 활약한 재담꾼인 김중진은 오이무름이라는 뜻의 과농이라는 별명으로 불렸다. 오이무름은 오이를 푹 삶은 다음 초간장으로 간을 하고 생강과 후추를 넣어서 만든 요리로 치아가 없는 노인들이 먹기 좋은 음식이다. 김중진이 과농이라고 불린 이유는 젊은 나이임에도 불구하고 치아가 모두 빠져버렸기 때문이다. 보기만 해도 웃음보가 터질만한 외모였기 때문에 단번에 백성들의 눈길을 잡아끌었지만 재담꾼으로도 진가를 발휘했다. 풍자와 해학에 달인이라는 평을 받았는데 그 중에서도 세 선비의 소원이라는 다소 교훈적인 이야기로 많은 관심을 끌었다. 어느 날, 저승사자의 잘못으로 예정보다 일찍 하늘나라로 간 세 선비가 옥황상제 앞에 서게 되었다. 옥황상제는 그들을 다시 현생으로 돌려보내주기에 앞서 소원을 하나씩 들어주겠다고 했다. 그러자 첫 번째 선비가 나서서 말했다.
“저는 다시 태어난다면 이름난 가문에서 마음껏 책을 읽고 좋은 스승 밑에서 공부를 하고 싶습니다. 그래서 과거에 장원으로 뽑혀서 높은 관직에 올라 임금님을 모시고 역사에 이름이 남기를 바랍니다.”
그러자 옥황상제는 그 선비가 살아생전에 음덕이 있었으니 마땅히 들어주겠다고 말한다. 이어서 두 번째 선비가 자신의 소원을 말한다.
“살아생전에 가난이 너무 지긋지긋했습니다. 새로 태어나면 부자 집에 태어나서 많은 돈을 가지고 부모와 처자식을 배불리 먹이고 주변 사람들에게 넉넉하게 베풀고 싶습니다. 부디 제 소원을 들어주십시오.”
얘기를 들은 옥황상제는 두 번째 선비가 생전에 가난하게 지낸 것은 전생에 부자로 살면서 타인은 업신여기고 오만방자하게 굴었던 것에 대한 벌이었다고 말한다. 하지만 그의 조상이 공덕을 쌓았으니 조상을 봐서 소원을 들어주겠다고 대답한다. 두 선비가 물러나고 옥황상제는 마지막 남은 선비를 바라봤다. 그러자 잠시 고민하던 마지막 선비가 입을 열었다.
“저는 앞의 두 사람처럼 출세나 부귀영화를 누릴 생각은 없습니다. 다만 홍수와 가뭄이 들지 않고 부역과 세금이 없는 산과 물이 있는 좋은 땅에 자그마한 집을 짓고 약간의 논밭을 가지고 싶습니다. 논밭을 일궈서 나온 곡식으로 가족들을 부양하고 자식들은 말썽을 부리지 않고 노비들도 말을 잘 들으며, 번거롭고 귀찮은 일이 없으면 좋겠습니다. 그렇게 백 세까지 편안하게 살다가 병 없이 죽는 것이 제 소원입니다.”
마지막 선비의 소원을 들은 옥황상제는 자신이 앉아있던 의자를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지금 네가 말한 것은 바로 청복이라고 부르는 것이다. 세상 사람들이 진정 원하는 것이지만 아무에게나 줄 수 없는 것이지. 그런 복을 누릴 수 있다면 내가 어찌 이 자리에 아쉬움을 남기겠느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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조선연예인 비사(祕史)By 스마트 미디어 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