예나 지금이나 외국어는 ‘통곡의 벽’입니다. 천부적인 언어능력을 자랑하면 모르되 외국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기란 쉽지 않은 일입니다.
옛날의 기록을 살펴보면 외국어 때문에 절명하고 망신당한 사람들이 꽤나 있었습니다. 고려말의 대학자이자 신진사대부의 스승으로 존경을 한몸에 받았던 목은 이색이 바로 굴욕의 대표주자입니다. 조기중국어교육에, 유학은 물론 북경에서 관리로까지 일했던 이색이 황제를 알현하는 자리에서 ‘그대의 중국어는 꼭 오랑캐 같다’는 핀잔을 들었으니까 말입니다. 반면 이순신의 5대조 할아버지인 이변은 서른이 넘어 급제했지만 그야말로 불철주야 중국어를 공부한 덕분에 역사에 남는 문신 출신 통역관이 됐습니다. 그 뿐 아니라 이순신 장군의 증조할아버지(이거)도 그 어렵다는 외교문서를 줄줄 읽을 정도로 중국어에 능했습니다. 만약 이순신 장군이 무장의 길을 걷지 않고 외교관이 됐다면 어찌 됐을까요. 싸우지 않고도 승전보를 안겨줄 수 있지 않았을까요. 역사엔 가정이 없으니 뭐라 말 할 수 없겠지요. 외국어 공부 때문에 울고 웃었던 옛 사람들의 이야기를 들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