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공녀로 뽑혀 원나라로 끌려가는 날 옷자락을 부여잡고 끌다가 엎어집니다. 울부짖다가 우물에 몸을 던지거나 스스로 목을 매 죽는 자도 있습니다.”
때는 바야흐로 원나라의 간섭이 극에 달했던 1335년이었습니다. 이곡(李穀·1298~1351)이 상소문을 올려 원나라가 강제로 뽑아가는 공녀(貢女)들의 피맺힌 사연을 호소했습니다. 말 그대로 ‘공물(貢物)’로 끌려가는 여인이었으니 얼마나 비극적입니까. 끌려간 소녀들의 상당수는 고된 노동과 성적인 학대에 시달렸습니다.
원나라 조정에는 고려풍의 옷, 즉 고려 패션이 선풍을 일으켰습니다. 고려여인들로 구성된 여악이 춤과 노래로 원나라 백성들을 매혹시켰습니다. 원나라 시를 보면 “보초 서는 병사들은 고려언어를 배우네. 어깨동무 하며 낮게 노래 부르니 우물가에 배가 익어가네.”(연하곡서)라는 대목이 있을 정도였습니다. 마치 〈소녀시대〉가 전세계에 K팝 열풍을 이끌 듯이…. 하기야 K팝의 K가 코리아, 즉 고려 아닙니까. 그러고보면 기황후는 고려판 한류의 원조였던 셈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