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산 꼭대기 지금의 팔각정터에 있었던 국사당은 우리 민족의 또 하나의 뿌리였습니다. 일제강점기 조선총독부는 지금의 남산식물원 터에 일본식의 신궁을 세웁니다. 이른바 '조선신궁'이죠. 조선을 일본화하는 데 있어 이 조선신궁은 일본의 정신을 식재하는 상징과 같은 장소였습니다. 그런데 이 조선신궁보다 더 높은 곳에 국사당이 자리잡고 있으니 일본 입장에서는 견딜 수 없는 굴욕이었을 겁니다. 당장 국사당이 헐리게 되고 조선의 무속인들이 자발적으로 십시일반해서 다시 세운 것이 지금 인왕산 국사당입니다. 남산 국사당보다 규모도 소박해지고 볼품도 없어졌지만 아예 사라질 뻔한 조선의 정신이 그곳에라도 남아 있게 된 것이 얼마나 다행일지...인왕산 국사당 주변에는 또 작고 볼품없는 절들이 옹기종기 모여 있습니다. 각기 이름이 있지만 한데 모여 있을 때는 그냥 인왕사로 불립니다. 불교와 민속종교가 어우러진 그 공간이 아마도 가장 한국적인 도량이 아닐까 생각해보게 됩니다. 인왕산 북쪽 홍제천 옆에 옥천암에는 고려시대부터 그 자리를 지키고 있는 얼굴 하얀 관세음보살님이 인왕산과 홍제천을 바라보며 앉아 있습니다. 천년이 넘는 세월 동안 무슨 생각을 하고 계실지...주말에 가서 한번 말이라도 걸어봄직한 친숙한 표정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