옛 초상화를 보고 있노라면 한가지 궁금증이 생깁니다. 왜 쭈글쭈글한 노인들만 주인공으로 등장했을까. ‘꽃청년’들은 왜 초상화의 주인공이 되지 못했을까. 다 이유가 있습니다. 젊은이들은 수양도 덜됐고, 학식도 부족하며, 경륜도 쌓지 못했다는 것입니다. 그래서 초상화에 등장할 자격이 없다는 것입니다. 옛 사람들은 초상화를 그저 사람을 본떠 그린다는 의미의 ‘초상(肖像)’이라 하지 않았습니다. 사진(寫眞)이라 했습니다. 내면의 ‘참됨(眞)’을 그대로 드러낸다는 것이었습니다. 그랬으니 아직 모든 면에서 설익은 젊은이들은 ‘사진’의 대상이 될 수 없었던 것입니다. 그랬으니 ‘터럭 한올, 털끝 한오라기(一毫一髮)’라고 허투루 그릴 수 없었습니다.
임금의 초상화도 어진(御眞)이라 했습니다. ‘임금의 참됨’을 드러내는 것이 바로 임금의 초상화라는 것입니다. 이번 주는 초상화의 의미를 알아보고, 나아가 임금의 초상화, 즉 어진을 둘러싼 이런저런 이야기를 나눠보겠습니다. 〈이기환의 흔적의 역사〉 62회 팟캐스트 주제는 ‘세종이 고려임금 어진을 불태운 까닭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