박광일: 독립협회의 시작은 상당히 화려하게 시작을 했습니다.
박수진: 처음에 고종과 고종의 측근들도 많이 참여했다고 들었는데요.
박광일: 네. 당시 지식인들이 많이 참여했습니다. 독립협회가 설립되고 그 이후의 과정은 많은 변천을 겪습니다. 처음에는 서재필을 중심으로 이루어졌습니다. 그리고 윤치호, 이완용 등이 참여했고요. 나중에는 개화한 관료들이 참여하고 이후에는 정부의 고위 관료들이 참여하는 관민공동회, 또 장사꾼, 백정, 상민이나 천민들이 주도한 만민공동회가 이루어집니다. 독립협회 구성원의 폭이 위아래로 대단히 넓었다고 볼 수 있습니다. 특히 만민공동회의 의미는 우리가 다시 한 번 되새겨 봐야 할 필요가 있는데요. 그동안 글로 써서 자신의 의견을 제대로 펼치는 것이 어려웠던 일반 백성들이 이제 글이 아닌 말로 자신들의 생각을 표현할 수 있게 된 것이죠. 1만여 명의 사람들이 모인 집회를 본 외국 열강들은 대한제국 백성들의 정치의식 성장에 크게 놀랐고, 또 그들의 의견을 무시할 수가 없었죠. 그렇게 만민공동회는 백성들이 중심이 되어서 나라의 중요한 정치 현안을 해결하는 성과를 거두게 됩니다.
윤태진: 그런데 고종은 그렇게 정치의식을 갖고 깨어나는 백성들과 함께 현안을 해결하지 않고 왜 독립협회를 해산시킨 건가요?
박광일: 네. 고종은 다른 무엇보다도 정권 유지가 우선이었습니다. 그 정권유지를 위해 새롭게 성장한 시민의 싹을 잘라버리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