당시 어렵게 왕위에 오른 정조는 즉위 첫날 윤음을 발표했습니다. 그 윤음에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 라는 표현이 나오는데요. 이 말을 두고 많은 분들이 정조가 신하들에게 선전포고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러나 그 뒷부분을 살펴보면 '선대왕께서 종통의 중요함을 위해 내게 효장세자를 이어받도록 명하셨거니와 아! 전일에 선대왕께 올린 글에서 근본을 둘로 하지 않는 것에 대한 나의 뜻을 볼 수 있을 것이다.'라는 말을 볼 수 있습니다.
그러니까 선대왕 영조가 말했던 정통의 문제는 절대 건드리지 않겠다. 즉 나는 사도세자의 아들이 아니라 효장세자의 아들이라는 것이다. 이 부분을 건드리면 선왕의 뜻을 건드리는 것과 동시에 나의 존재도 없는 것이라고 선언을 한 것입니다.
그렇다면 정조는 왜 '과인은 사도세자의 아들이다'라고 말한 것일까요? 사도세자의 죽음과 정조 자신을 둘러싼 모든 것이 영조의 뜻이었기 때문입니다. 이제 막 왕위에 오른 정조가 만일 영조의 정책에 명백하게 반대한다면 노론세력이 정조를 공격할 것이고 또한 정국을 파탄으로 몰아가면서 정조에게 그 책임을 지울 가능성이 높았다. 신하들은 서로 상반되는 내용을 모두 받아들일 수도, 또 받아들이지도 않을 수 없게 된 것이죠. 이는 정조의 고도의 정치적인 계산에서 나온 발언이라고 볼 수 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