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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에덴 동산의 범죄 후 노출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3장 7-8절 (새번역),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잎사귀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려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 아볼로, 게바 중 누가 더 대단한 지도자인지를 따졌고, 그 지도자들을 통해 자기들의 영적 수준까지 과시하려 했습니다. 골목대장을 따르는 사람들의 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여러분,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사역자는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헌신과 수고를 했다고 해도 교인은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께 속한 일꾼이며, 하나님이 맡기신 복음의 비밀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무익한 종, 할 일을 다했습니다" 뿐입니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신실함입니다. 화려한 말솜씨도, 많은 추종자도, 사람들의 박수도 아닙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2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평가가 자신에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판단자는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4절)
8절에서 바울의 어조는 날카로워집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치 부활의 영광이 이미 완성된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지나간 일이고, 왕관은 이미 자기들의 것인 양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왕이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다스리는 자신들을 위한 왕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던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애굽기 32:1)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그는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같이" 맨 끝에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다니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9–13절). 사도의 삶은 영광의 포장지가 아니라 십자가의 형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찾아야 하는 것은 왕관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을 우리가 마음에 품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날카로운 말은 정죄가 아닙니다.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온 권면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14절) 복음 안에서 낳은 자녀에게 아버지가 주는 경고는 수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고, 결국 자신도 그들에게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절) 고린도 교회는 말이 많았습니다. 자랑도 많았습니다. 평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재주와 자기 과시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따라가는 신실함, 복음이 실제로 사람을 낮추고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성도로, 어떤 청지기로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끌려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맡은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역도, 은사도, 기회도, 사람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사람들의 박수가 아니라 주님의 판단 앞에 신실한 청지기로 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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By Jubilee Christian Life Coach댓글 창
우리는 다른 사람들의 시선에서 완전히 자유롭지 못한 것 같습니다. 아마도 에덴 동산의 범죄 후 노출된 우리의 모습이 부끄러운 것을 본능적으로 아는 것 같습니다.
창세기 3장 7-8절 (새번역), "그러자 두 사람의 눈이 밝아져서, 자기들이 벗은 몸인 것을 알고, 무화과나무 잎으로 치마를 엮어서, 몸을 가렸다. 그 남자와 그 아내는, 날이 저물고 바람이 서늘할 때에, 주 하나님이 동산을 거니시는 소리를 들었다. 남자와 그 아내는 주 하나님의 낯을 피하여서, 동산 나무 사이에 숨었다."
고린도 교회도 그랬습니다. 그러나 그들은 잎사귀가 아닌 다른 사람들로서 자신들의 허물을 감추려 했습니다. 그들은 바울, 아볼로, 게바 중 누가 더 대단한 지도자인지를 따졌고, 그 지도자들을 통해 자기들의 영적 수준까지 과시하려 했습니다. 골목대장을 따르는 사람들의 심리가 아닐까 싶습니다.
그런 그들에게 바울은 말합니다. "사람이 마땅히 우리를 그리스도의 일꾼이요 하나님의 비밀을 맡은 자로 여길지어다."(1절) 여러분, 아무리 능력이 있더라도 사역자는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아무리 헌신과 수고를 했다고 해도 교인은 교회의 주인이 아닙니다. 우리는 모두 다 그리스도께 속한 일꾼이며, 하나님이 맡기신 복음의 비밀을 관리하는 청지기입니다. 우리의 고백은 "무익한 종, 할 일을 다했습니다" 뿐입니다.
청지기에게 요구되는 것은 오직 하나입니다. 신실함입니다. 화려한 말솜씨도, 많은 추종자도, 사람들의 박수도 아닙니다. "맡은 자들에게 구할 것은 충성이니라."(2절)
그래서 바울은 고린도 사람들의 평가가 자신에게는 "매우 작은 일"이라고 말합니다. 심지어 자기 자신도 스스로를 판단하지 않는다고 합니다. 왜냐하면 최후의 판단자는 오직 주님이시기 때문입니다. "나를 판단하실 이는 주시니라."(4절)
8절에서 바울의 어조는 날카로워집니다. "너희가 이미 배부르며 이미 풍성하며 우리 없이도 왕이 되었도다." 고린도 교인들은 마치 부활의 영광이 이미 완성된 것처럼 살고 있었습니다. 십자가는 지나간 일이고, 왕관은 이미 자기들의 것인 양 여겼습니다. 그들은 예수가 왕이신 하나님 나라를 세우는 것이 아니라 자신들이 다스리는 자신들을 위한 왕국을 세우고 있었습니다. 출애굽 당시 광야에서 금송아지를 만들던 그 모습이 떠오릅니다. "일어나라 우리를 위하여 우리를 인도할 신을 만들라." (출애굽기 32:1)
그러나 바울은 전혀 다른 길을 보여 줍니다. 그는 사도들을 "사형 선고를 받은 자같이" 맨 끝에 세우셨다고 말합니다. 굶주리고, 목마르고, 헐벗고, 매 맞고, 정처 없이 다니며, 세상의 더러운 것과 만물의 찌꺼기 같은 취급을 받는다고 고백합니다(9–13절). 사도의 삶은 영광의 포장지가 아니라 십자가의 형상을 띠고 있었습니다. 진정한 성도가 찾아야 하는 것은 왕관이 아닙니다. 주님이 쓰신 가시 면류관을 우리가 마음에 품지 않고서는 올바른 신앙생활을 할 수 없습니다.
그러나 바울의 날카로운 말은 정죄가 아닙니다. 자녀를 향한 아버지의 마음에서 나온 권면이었습니다. "내가 너희를 부끄럽게 하려고 이것을 쓰는 것이 아니라 오직 너희를 내 사랑하는 자녀같이 권하려 하는 것이라."(14절) 복음 안에서 낳은 자녀에게 아버지가 주는 경고는 수치가 아니라 사랑입니다. 그래서 바울은 디모데를 보내고, 결국 자신도 그들에게 가겠다고 말합니다.
그리고 바울은 이렇게 선언합니다. "하나님의 나라는 말에 있지 아니하고 오직 능력에 있음이라."(20절) 고린도 교회는 말이 많았습니다. 자랑도 많았습니다. 평가도 많았습니다. 그러나 하나님의 나라는 말재주와 자기 과시에 있지 않습니다. 십자가를 따라가는 신실함, 복음이 실제로 사람을 낮추고 변화시키는 능력에 있습니다.
오늘 나는 어떤 성도로, 어떤 청지기로 살고 있습니까? 사람들의 시선과 평가에 끌려 살고 있지는 않습니까? 내가 맡은 것은 내 것이 아닙니다. 사역도, 은사도, 기회도, 사람도 모두 주님의 것입니다. 주님께서 오시는 날, 사람들의 박수가 아니라 주님의 판단 앞에 신실한 청지기로 서기를 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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