조선의 건국은 상당히 독특한 시스템으로 이루어집니다. 엄밀하게 따지면 평화적인 정권의 이양이 이루어진 것이죠. 고려의 건국만 해도 신라에겐 항복을 받고, 후백제는 전쟁을 통해 멸망을 시킵니다. 그 이전의 모든 건국자들 역시 전쟁과 무력으로 나라를 세웠습니다. 그러나 이성계는 (정치적인 이면의 내용을 차치하더라도 겉으로 보기엔) 아주 평화적으로 왕위를 이어받습니다. 여기서 문제는 백성들이 새로운 나라를 어떻게 받아드리냐는 것인데요. 한 나라를 끝내고 시작되는 새로운 나라. 이를 받아드리기 위해서는 이전과 명백히 다른 나라여야 하는 것이고, 그 새로운 판을 짜는데 꼭 필요했던 인물이 바로 정도전 입니다.
그 새로운 판에 등장시킨 것이 바로 ‘토지개혁 문제’ 입니다. 권문세족의 토지 소유로 심각한 사회문제를 앓고 있던 민심을 자극시킨 것이죠. 이성계 일파는 모든 백성과 관료에게 토지를 나누어 준 뒤 그 대가로 세금을 걷는 방식인 과전법을 내세웁니다. 이를 위해서는 권문세족의 토지와 농장을 국가에서 몰수해야만 가능한 일입니다. 이성계와 정도전은 국가, 곧 사회가 처한 문제의 본질이 무엇이고 백성들의 지지를 받을 수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정확히 알고 있었던 것입니다.
물론 반포된 과전법과 달리 일반 백성에게 토지를 나누어주지는 못했지만, 과전법으로 인해 당시 권문세족의 세력이 상당부분 약화됐고, 대토지를 소유하며 일어났던 문제점의 상당 부분이 없어졌습니다. 그렇기 때문에 이성계와 정도전은 손을 잡고 새로운 국가 건설이라는 큰 그림을 그릴 수 있었던 게 아닐까 싶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