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착한 미술’이 대접 받는 잡동사니-생태계
팟케스트 [말하는 미술] 6회의 주인공은 작가 주재환(1941년 생)입니다.
-프롤로그 중에서-
주재환 작가 특집으로 구성된 <포럼에이> 3호(1998년)와
주재환 작품집 <이 유쾌한 씨를 보라>에 글을 쓰기도 한
큐레이터이자 비평가 백지숙은
‘하하하’라는 글자가 캔버스 위에 분산 반복되는 주재환의 유화 작품 <웃음소리>를 두고
“미분화되어 있거나 아니면 서로 소외되어 있는 인간의 감각에 관한 리포트이자,
크고 넓은 회화의 우주를 관조하는 한 편의 시조이며,
우리 시대의 가난한 미술과 작가에게 보내는 지극히 성스러운 그래피티다.”라고 말한 적이 있지요.
작가에 대한, 미술에 대한, 사물에 대한, 인간에 대한
허술한 대접, 용도폐기 취급, 권력화에 맞서
일견 허름해 보일지라도
허무와 자조에 빠지지 않고,
여전히 통렬한 ‘하하하’를 구사하는
작가 주재환의 말, 지금부터 들어봅니다.
-에필로그 중에서-
작가 주재환은
생활을 들여다보고 사람과 관계 맺는 ‘착한 미술’을 높이 사는 작가입니다.
또한 피를 팔아 두부를 사는 애환을 기억하고,
잡동사니를 끌어모아 뼈대만 남은 도깨비나 로봇을 자주 형상화합니다.
하루의 작업을 마치고 나이와 학벌을 불문한 친구들과 막걸리 한 잔을 즐기는 이 작가,
그의 작업에서 불쑥 등장하는 우리 인간의 자화상입니다.
앙상한 소비사회의 변두리, 즉 쓰레기와 부스러기 속에서 소환된 지극히 인간적인 생명력입니다.
주재환을 미술이라는 언어 안에서 말하는 와중에,
우리는 자문하고, 고민하고, 또한 의심해 봅니다.
이 작가를 폐품처럼 낭만적으로 한 번 가져다 쓰고 말아버리는 것은 아닌지…
90년대 말(포름에이 3호), 2000년대 초(아트선재 개인전) 주재환을 발견해낸 당시 미술이란 언어체계가
그의 작업을 모더니즘이나 형식 미학에 대한 반동으로,
삶을 반영한 풍자와 유추의 산문성과 연극성으로 읽어냈다면,
지금 우리는 어떤 태도와 말로 그의 예술세계의 가치를 담아낼 수 있을까요?
이 물음을 함께 하시는 청취자분들과 함께 담아두고 싶습니다.
혁신적, 창조적인 전문가가 되어야 한다는 강박에 우리는 내모는 현재,
예술하면서 인간적인 정을 서로 나누고,
서로의 생활에 도움이 되도록 보살피는 삶과 작업 과연 가능할까요?
영원한 아마추어로 남은, 남기로 작정한 이 작가는 우리에게 보여줍니다.
창작과 감성이 어우러진 우주.
도깨비와 짜장면 배달부 그리고 깡통 로봇이 천체의 생리안에 살갑게 공존하는 생태계.
폐품과 잡동사니, 주변주를 미롯한 만물이 진동주기를 맞춰 움직이는 공간,
그 생태계에서 우리는 또 다른 방식의 삶과, 노동 그리고 예술의 질서를 느껴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