점점 고조되는 북한의 전쟁 위협!
한반도를 둘러싼 세계적인 관심 혹은 우려에 대해
우리는 어떤 태도를 취해야할까?
당나라를 끌어들여 통일을 이룬
신라의 태종무열왕 김춘추의 외교술을 통해
우리는 무엇을 배울 수 있을까?
온고지신(溫故知新)과 법고창신(法古創新)
지금 대한민국에 꼭 필요한 선현의 지혜가 아닐까.
<삼국사기 : 신라본기> ‘진덕왕 2년’ 조
김춘추와 그 아들 문왕을 당나라에 입조시켰다. 태종이 광록경 유형을 보내 교외에서 맞이했다. 춘추가 국학에서 제사와 강론을 참관할 수 있게 해달라고 요청하자 황제가 허락했다. 또한 자기가 지은 글과 새로 편찬한 <진서(晉書)>를 하사했다. 이윽고 태종이 연회를 열어 물었다.
“그대는 속에 품은 말이 있는가?”
김춘추가 꿇어 앉아 아뢰었다.
“신의 본국은 바다 모퉁이에 치우쳐 있습니다만 천자의 조정을 섬겨오기를 여러 해 동안 해왔습니다. 그런데 백제는 강하고 교활해 여러 차례 저의 나라를 침략했습니다. 얼마 전에는 깊이 쳐들어와서 수십 개의 성을 함락시키고 당나라에 입조하는 길을 막았습니다. 만약 폐하께서 군대를 빌려주시어 그 흉악함을 잘라버리지 않는다면 저의 나라 인민은 모두 포로가 될 것입니다. 그리 되면 바다 건너 조공을 바치는 일도 다시는 할 수 없습니다.”
태종이 옳다고 여겨 출병을 허락했다. 이에 김춘추가 신라의 관복을 당나라의 예에 따르겠다고 하자 황제가 안에서 옷을 내오게 해 선물로 주었다. 춘추는 또 태종에게 청해 자신의 아들 문왕을 황제의 호위로 삼도록 했다.
박규수, <환재집> ‘헌의(獻議)’ 편
작금의 한반도는 열강 사이에 낀 나라로, 춘추전국시대 정나라의 처지와 비슷하다. 정나라는 진나라와 초나라, 두 강대국 사이에 있던 작은 나라였다. 게다가 진과 초가 꼭 차지해야 할 전략 요충지에 위치하고 있었다. 때문에 끊임없이 침략 위협에 시달렸는데, 정나라는 오히려 이런 조건을 유리하게 활용했다. 두 강대국이 넘보지 못하도록 안으로 뭉치고 국력을 키우면서 중립외교를 펼친 것이다. 초나라와 진나라는 정나라가 원하는 대로 해줄 수밖에 없었다. 작은 나라지만 상대편에 붙으면 자국이 위험해지기 때문이다. 정나라는 덕분에 중원의 강자로 자리매김할 수 있었다. 그러나 이후 정나라가 혼란해지고 힘을 잃자 강대국들이 서로 먼저 먹으려고 쳐들어왔고 마침내 멸망하고 말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