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채널 권경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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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채널 권경률 episodes

  • 한국사를 바꾼 연애 6회 [고려왕조를 무너뜨린 삼각 연애스캔들 2부]
    기울어가는 고려왕조에 결정타를 날린 것은 누구일까?
    인생의 파트너를 잃고 정신도 잃어버린 공민왕? 왕의 아들로 태어나 왕이 되었지만 인정받지 못한 우왕? 아니면 권력을 위해 거짓 역사를 만든 조선 건국세력?
    그리고 우리가 역사의 큰 줄기를 바라보며 고민할 때 권력싸움의 한가운데 수장되어버린 비련의 여인이 있었으니…
    한국사를 바꾼 연애사건에서 그 답을 찾아보세요!
    1 hr 10 min
  • 한국사를 바꾼 연애 4회 [양녕대군과 어리의 연애사건 2부]
    ‘아빠는 첩 들이면서 나는 왜 안돼요!’
    반항에 반항을 거듭하며 스스로 왕좌에서 멀어지는 것처럼 보였던 양녕대군
    그런데 사실은 ‘문치’를 위한 태종의 전략이었다!?
    조선의 위대한 왕, 세종대왕을 만든 양녕대군과 어리의 연애사건 이야기 속으로 들어가보시죠!
    1 hr 22 min
  • 한국사를 바꾼 연애 3회 [양녕대군과 어리의 연애사건 1부]
    ‘유교국가, 조선’에 불효를 저지른 임금이 있었으니 그는 바로 태종 이방원!
    실질적인 조선의 창업자였음에도 불효라는 원죄에서 자유롭지 못한 그가 택한
    ‘나라가 나라다워지는 길’은 바로 적장자의 왕위계승. 그러나 부모 마음대로 되지 않는 것이 자식농사.
    사춘기에 접어들며 삐뚤어진 세자 양녕대군은 나라를 뒤집은 희대의 연애스캔들을 일으키고 마는데…
    가만히 있으면 왕이 되었을 양녕대군의 연애행각, 한국사를 바꾼 연애 사건들에서 만나보시죠!
    1 hr 8 min
  • 한국사를 바꾼 연애 2회 [‘자유부인’ 어우동을 처형한 성종의 ‘여성혐오’ 2부]
    어우동 스캔들로 발칵 뒤집힌 조정, 땅에 떨어진 왕실의 위엄
    그리고 어우동의 처형을 두고 팽팽히 맞선 훈구파와 사림 관료들!
    하지만 그녀와 함께 어울린 남자들에 대한 처결은 솜방망이었고,
    성종이 어우동의 즉결처형을 명령한 이유도 사실은 윤씨의 폐비를 위해서였다는데…
    한국사를 바꾼 연애 2회에서 성군 성종의 또 다른 면을 살펴보시죠!
    59 min
  • 한국사를 바꾼 연애 1회 [‘자유부인’ 어우동을 처형한 성종의 ‘여성혐오’ 1부]
    섹스앤더시티 보다 500년 앞선 진보여성의 선두주자 '어우동' 그리고 그녀의 남자들
    돈 많은 양반댁에서 태어나 왕족과 결혼했지만 '어우동'같은 인생을 살 수 밖에 없었던 '어우동'의 인생을 통해 살펴보는 조선 전기 정치, 사회사
    역사를 바꾼 연애사 대망의 1회 ‘자유부인’ 어우동을 처형한 성종의 ‘여성혐오’편에서 시시콜콜 파헤칩니다!
    51 min
  • 낭독 한국사 90회 ‘장옥정을 통해 본 조선 궁녀의 삶’ 3부 [시즌1 마지막회]
    드디어! ’장옥정을 통해 본 조선 궁녀의 삶’의 마지막회 이자 낭독한국사 시즌 1의 ‘마지막회’가 업로드되었습니다! 90회 동안 열렬히 사랑해주신 여러분들께 깊이 감사드리며~ ‘권경률 정정기의 낭독한국사’ 시즌1의 마지막회 많은 청취바랍니다!
    <추안급국안> ‘기묘 나인 등 저주 옥사’
    9월 1일, 궁비(宮婢) 서향, 나이 30.
    “아룁니다. ‘너는 나인 기옥과 한 몸과 같다. 서찰과 음식을 자주 들여보냈으며 물건을 왕래할 때는 직접 주고받았다. 기옥의 아비 차귀현의 진술에서도 너는 전부터 기옥과 절친했다고 했다. 궐내에서 들은 말들도 그 말과 동일하다. 어느 때에 함께 모의했으며, 저주물은 몇 번이나 들여보냈느냐? 사실대로 고하라.’고 하셨습니다. 제가 기옥과 함께 모의해 저주물을 들여보냈다는 혐의는 제 머리를 자른다고 해도 인정할 수 없습니다.”
    <인조실록> 1639년 9월 1일
    기옥에게 형문 6차, 압슬 1차, 낙형 1차를 가했다. 서향에게는 형문 7차, 압슬 1차를 가했다. 그러나 모두 자복하지 않고 죽었다.
    46 min
  • 낭독 한국사 89회 ‘장옥정을 통해 본 조선 궁녀의 삶’ 2부
    조선시대 유일무이한 궁녀 출신의 왕비 ‘장옥정’ 11살에 궁녀가 된 장옥정은 어디서 일을 했고, 어떻게 숙종과 만나게 되었을까?
    드디어 시작된 숙종과의 러브스토리를 통해 알아보는 조선시대 궁녀의 업무분장과 출세에 대해 함께 알아보시죠!
    <숙종실록> 1686년 12월 10일
    궁인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淑媛)으로 삼았다. 전에 역관 장현은 나라의 거부로서 복창군 이정과 복선군 이남의 심복이 되었다가 경신년의 옥사에 형을 받고 멀리 유배되었는데, 장씨는 곧 장현의 종질녀(從姪女)이다. 나인(內人)으로 뽑혀 궁중에 들어왔는데 자못 얼굴이 아름다웠다.
    경신년 인경왕후가 승하한 후 비로소 은총을 받았다. 현열대비가 곧 명을 내려 그 집으로 쫓아내었는데, 숭선군 이징의 아내 신씨가 희귀한 보물로 여겨 자주 그 집에 불러들여 보살펴 주었다.
    현열대비가 승하한 후에 인현왕후가 임금을 위해 장씨를 불러들이라고 청했다. 자의대비도 힘써 그 일을 권하니, 임금이 곧 궁에 들여 총애하였다.
    장씨의 교만하고 방자함은 날로 심해졌다. 어느 날 임금이 희롱하려 하자 그녀가 피해 달아나 인현왕후의 앞에 뛰어들었다. ‘제발 나를 살려주십시오.’라고 하였는데 이는 인현왕후의 기색을 살피고자 함이었다.
    이후로 인현왕후가 시키는 모든 일에 대해 공손하지 않았으며, 심지어는 불러도 순응하지 않는 일까지 있었다. 어느 날 인현왕후가 명하여 종아리를 때리게 하니 더욱 원한과 독을 품었다.
    인현왕후가 이를 근심하여 임금에게 따로 후궁을 선발하게 하였다. 김창국의 딸이 뽑혀 궁으로 들어왔으나 또한 총애를 받지 못하였다. 얼마 있지 않아서 마침내 장씨를 책봉하여 숙원으로 삼았다
    25 min
  • 낭독 한국사 88회 ‘장옥정을 통해 본 조선 궁녀의 삶’ 1부
    여러분이 생각하는 ‘장희빈’은 누구인가요? 김혜수? 김태희? 아니면 전인화?
    역사 속 여성들 중에서 누구보다 드라마틱한 인생을 살았고, 그렇기에 누구보다 드라마에서 많이 다뤄진 장희빈의 인생을 통해 ‘궁녀’의 삶을 살펴보는 낭독한국사! 많은 청취 바랍니다.
    혜경궁 홍씨, <한중록(閑中錄)>
    병자년에 부릴 나인이 없어 세자궁과 빈궁에 소속된 사약과 별감의 딸들 중에서 나인을 뽑으려 했으니. 세자께서 생각하신 게 아니라 내가 나인이 없어 뽑자고 했던 것이다. 그리 하여 사약 김수완의 딸과 별감의 자식을 들였더라. 아침에 이 일을 했는데 왕이 낮에 어느 사이 아시고 세자를 부르셔서 꾸짖으시니. “네 어이 내게 아뢰지 아니하고 나인을 뽑느냐?” 꾸중이 대단하시니, 놀랍기가 이를 것이 없더라.
    작자미상, <계축일기(癸丑日記)>
    인목대비 : “네 어찌 하여 이리로 들어왔는고?”
    상궁 천복이 : “친히 시위하라는 어명으로 들어왔나이다. 전지도 가지고 왔나이다.”
    인목대비 : “전지란 것이 무엇이냐? 네 어찌 전지라는 말을 함부로 하느냐?”
    상궁 천복이 : “소인에게 들어가 옥체도 잘 간수하고 요사한 일을 하거든 금지하고 보고하라 하시더이다.”
    인목대비 : “용한 말이로다. 내 아무리 위세가 꺾여 보잘 것 없어졌다 하나 종 부리는 데까지 이토록 여러 말이 있단 말이냐?”
    44 min
  • 낭독 한국사 87회 ‘과부의 사랑은 무죄! 천추태후와 비선실세’ 3부
    천추태후와 김치양의 연애는 불륜인가? 사랑인가? 권력을 가진 사람이라면 누구나 꿈꾸는 권력의 세습! 여자이기 때문에 벽에 부딪친 천추태후의 권력세습은 현대를 살아가는 우리들에게 어떤 시사점을 주는 것인가? 역사 인물들의 애정사를 통해 현재의 대한민국을 이야기하는 권경률, 정정기의 낭독한국사! 많은 청취바랍니다.
    <고려사 열전> ‘경종 후비 – 헌애왕태후’
    왕태후가 김치양과 간통하여 아들을 낳고 왕위에 올리려 했다. 조카인 대량원군 왕순은 억지로 출가시켜 삼각산 신혈사에 붙어살게 했다. 세상에서 그를 신혈소군(神穴小君)이라 불렀다.
    태후는 여러 차례 대량원군을 암살하려 했다. 하루는 내인(內人)을 시켜 독약이 든 술과 떡을 보냈다. 내인이 절에 당도해 소군을 만나 몸소 먹이고자 했는데, 절의 어떤 승려가 소군을 땅굴 속에 숨겨 놓고는 간 곳을 알 수 없노라고 속였다. 내인이 돌아간 뒤 떡을 뜰에 버렸더니 까마귀와 참새가 주워 먹고 그대로 죽어 버렸다.
    <고려사절요> ‘목종대왕 1003년’
    백관에게 벼슬을 주고 빼앗는 일이 모두 김치양의 손에서 결정되었으며, 그 당이 조정에 늘어서서 세력을 온 나라에 떨쳤다. 집을 지었는데 3백여 칸이나 되며, 누대와 정자와 동산과 못이 극도로 화려하였다.
    밤낮으로 태후와 놀고 희롱하여 아무런 두려움이나 꺼림이 없었다. 왕이 항상 그를 내쫓고자 하였으나, 어머니의 마음을 상하게 할까 두려워 감히 내쫓지 못하였다.
    30 min
  • 낭독 한국사 86회 ‘과부의 사랑은 무죄! 천추태후와 비선실세’ 2부
    ‘부인’이라고 쓰고 ‘정치적 파트너’라고 읽는다!
    고려태조 왕건의 29명의 부인들과 그 자녀들이 벌이는 왕위를 둘러싼 암투부터
    자신의 사랑을 쟁취하기 위한 왕비들의 고군분투까지~
    그 드라마틱한 역사의 순간으로 ‘낭독한국사’가 안내합니다!
    <고려사 열전> ‘태조 후비 – 신정왕태후’
    신정왕태후 황보씨는 황주(黃州) 사람이며 태위 황보제공의 딸로 대종(戴宗)과 대목왕후를 낳았다. 애초 ‘명복궁대부인’으로 책봉되었다가 성종 2년(983년) 7월에 죽었다. 성종은 어려서 친모인 선의태후를 여의고 왕후 슬하에서 자랐으므로 크게 애통해 하며 백관을 거느리고 빈전(嬪殿)에 나아가 ‘신정왕태후’라는 시호를 올렸다. 그 책문은 다음과 같다.
    “태조께서 붕어하신 이후 근 오십년을 홀몸으로 계시면서 손자들을 돌보아 기르셨으니, 그 이름과 사적은 후비의 전기에 빛나나이다. 돌이켜 보건대 보잘 것 없는 이 몸은 일찍이 불행을 만났으니 어린 나이에 부모를 잃어 조모님 품안에서 양육되었지만 마치 부모의 슬하에 있는 것처럼 편안했습니다. 맛난 음식은 남겨 두었다가 저를 먹여 주셨으며, 부드럽고 따뜻한 옷을 이 외로운 몸에게 입혀 주셨습니다. 그 정성스런 양육 덕분에 이 몸이 잘 자라 다행히 가문의 위업을 이어받고 외람되이 왕위에 오르게 되었습니다.”
    <고려사 열전> ‘태조 후비 – 신혜왕후 유씨’
    신혜왕후 유씨는 정주(貞州) 사람이며 삼중대광 유천궁의 딸이다. 유천궁은 집이 크게 부유하여 고장 사람들이 ‘장자(長者)’라고 칭하였다. 태조가 군사를 거느리고 정주를 지나다가 버드나무 밑에서 말을 휴식시키는데 마침 왕후가 길가 냇가에 서 있었다.
    태조가 그 집에서 묵자 유 장자는 군사들을 풍족하게 대접하고 왕후로 하여금 잠자리에 들도록 하였다. 그 뒤 서로 소식이 끊어졌는데 왕후는 지조를 지키기 위해 머리를 깎고 중이 되었다. 뒤에 태조가 이 말을 듣고 불러서 부인으로 삼았다.
    홍유, 배현경, 신숭겸, 복지겸이 궁예를 폐하고자 태조의 집에 찾아와 의논할 때 왕후는 장막에 숨어 엿들었다. 태조가 대업을 거절하자 왕후가 장막에서 나와 말하였다.
    “의로서 학정을 바꾸는 것은 예로부터 있어온 일입니다. 지금 장수들의 의논을 듣고 첩도 분발이 되거늘 하물며 대장부이리요.”
    그리고는 왕후가 손수 갑옷을 갖춰 입히니 장수들이 부축하고 나와 드디어 즉위하였다.
    <고려사 열전> ‘태조 후비 – 장화왕후 오씨’
    장화왕후 오씨는 다련군의 딸이며 대대로 나주(羅州) 목포(木浦)에 살았다. 수군 장수로 나주에 출진한 태조가 어느 날 목포 쪽을 바라보니 오색구름이 머무르는지라 가보니 왕후가 빨래하고 있었다. 태조가 불러 잠자리에 들었으나 신분이 미천하므로 임신을 원치 않아 침석에 사정하였다. 왕후가 이를 흡입하고 드디어 아들을 낳으니 그가 고려 제2대 왕 혜종(惠宗)이다.
    29 min