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나는 소망한다. 내게 금지된 것을…’ 여기, 소설의 제목처럼 살다간 왕자가 있다. 조선의 위대한 임금의 후광에 가려져 제대로 보지 못했던 조선의 적장자 ‘양녕대군’. 그가 벌인 충격적인 간통 행각의 원인은 도대체 무엇이었을까?
이번 시간에는 세종대왕 본인이 아닌 세종대왕이 왕이 된 이유를 시시콜콜 파헤쳐 보겠습니다!
[태종실록 1417년 2월 15일, 세자의 간통]
처음에 악공 이오방이 몰래 동궁에 들어가 전 중추(中樞) 곽선의 첩 어리가 자색(姿色)과 재예(才藝)가 모두 뛰어나다고 칭찬했다. 세자가 즉시 이오방으로 하여금 그를 도모하게 하였다. 이오방은 그 무리 홍만과 더불어 곽선의 생질녀의 남편 권보에게 청했다.
권보가 말하기를, “곽선은 나와 인친(姻親)의 은혜가 있어 속일 수 없다. 그러나 감히 명을 따르지 않을 수 있겠느냐?” 하고, 그의 첩 계지를 시켜 어리에게 말하였으나, 어리가 응하지 아니하였다. 이법화가 세자에게 고(告)하기를, “신물(信物)을 보내느니만 같지 못합니다.” 하여, 즉시 어린 환관을 시켜 수낭(繡囊)을 보내었는데, 어리가 사양함에도 억지로 두고 돌아왔다. 어리가 이 일을 곽선의 양자 이승에게 알리고 그대로 그 집에서 유숙하였다.
이법화가 또 세자에게 고하기를, “이 기회를 놓쳐서는 안됩니다.” 하자, 세자가 젊은 환관들을 거느리고 대궐 담을 넘어 도보로 이오방의 집에 가서, 그와 함께 이승의 집에 이르렀다. 어리를 찾으니, 이승이 듣지 않으므로 강요한 뒤에야 만나게 되었다.
드디어 어리를 궁중으로 납치(納置)한 다음, 세자가 활을 이승에게 보내고, 어리도 또한 비단을 이승의 처에게 보냈으나, 이승은 활만 받고 비단은 받지 아니하였다.
그가 임금에게 고하고자 하니, 세자가 사람을 시켜 힐난하기를, “너는 나의 한 일을 사헌부나 형조에 고하려 하는가? 이 일을 어디에 고할 것인가?” 하여, 이승이 두려워서 고하지 못하였다.
[태종실록 1408년 10월 1일, 민무구 형제의 죄 ]
내가 지난번에 세자 이제에게 전위하였는데 대소신료가 날마다 대궐 뜰에 나와 불가함을 힘써 말하고 잇달아 눈물로 울었다. 내가 그래도 듣지 않으니, 대신들이 태상왕께 달려가 고하여 전위할 뜻을 저지시켰다. 마침 민무구 등이 임금의 핏줄을 제거한다는 말이 있었으므로, 내가 심히 두려워하여 곧 중의를 따랐다.
무구 형제는 전위하는 것을 기뻐하고, 그 뜻을 거두는 것을 분하게 여겨서 이때부터 불충한 형상이 여러 번 밖에 나타났다. 이에 대신과 백관이 무구, 무질의 불충한 죄를 극형으로 다스리라고 청하였다. 내가 훈구(勳舊)의 연고로 인하여 법에 처치하지 않으매, 무구 형제가 스스로 그 죄를 알고 외방에 나가 거처하였다.
근자에 대간(臺諫)이 상언(上言)하기를, ‘무구 형제의 죄는 마땅히 법에 처치하여야 하는데, 하물며 지금 왕래하여 서로 결탁하는 자가 심히 많으니 그 뜻을 헤아릴 수 없습니다. 청컨대, 유사에 내려서 그 죄를 밝게 바루소서.’ 하였다. 그들은 사사로이 모여서 어린 세자를 끼고 나라의 권세를 쥐려고 꾀하였다.
아아! 두 마음이 없도록 어찌 감히 신하가 힘쓰지 않는가? 이것은 다만 제 몸에 재앙을 부를 뿐 아니라 무구, 무질로 하여금 그 멸망을 스스로 재촉한 것이니, 해 되는 바가 어찌 심히 크지 않으며, 또한 누구를 원망하겠는가? 상벌을 공정하게 하는 것은 내가 마땅히 할 일이다. 장차 함께 법에 처치하여 엄히 징계하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