세종대왕은 어떻게 성군이 되었을까? 현대 정치에서도 꼭 필요한 ‘소통’의 제왕 세종대왕.
생각보다 끈질기고, 상상 이상으로 오래가는 세종대왕의 ‘소통’에 관한 이야기와
언제나 낭독과 함께 나타나 낭독과 함께 사라지는 정정기 박사의 숨겨진 얼굴까지 파헤쳐보는
‘권경률, 정정기의 낭독한국사’ 많은 청취바랍니다!
<세종실록> 1429년 11월 16일
임금께서 좌우에 이르기를, “우리나라의 인구가 점점 번식하고, 토지는 날로 줄어들어 넉넉하지 못하니 슬픈 일이다. 만일 공법을 세우게 된다면, 반드시 백성에게는 후하게 되고, 나라 일도 간편해질 것이다. 우선 이 법을 행하여 1~2년간 시험해 보는 것이 옳을 것이다. 호조는 토지 1결(結)에 쌀 몇 두(斗)를 받을지 계산하여 보고하도록 하라.”
<세종실록> 1430년 3월 5일
(호조의 보고를 받고) 임금께서 명하기를, “서울의 육조와 관사, 각도의 감사와 수령, 전직 품관은 물론이고 여염(閭閻)의 세민(細民)에 이르기까지 모두 가부(可否)를 물어서 아뢰게 하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