대한민국에 박근혜, 최순실, 이재용이 있다면
조선에는 김민, 심전, 조태채가 있다.
기생첩을 뇌물창구로 전국에서 뇌물사업을 벌인
부패한 관리들의 천태만상!
그리고 조선시대 뇌물스캔들의 또 다른 주역, 향리(鄕吏)
가장 적극적으로 가장 가까운 곳에서
백성을 등쳐먹는 향리들이 넘쳐나는 ‘뇌물왕국, 조선’의 두번째 이야기
이희준, <계서야담>, 향리가 된 가난한 유생
옛날 글재주가 뛰어난 유생이 있었는데 과거시험에서 번번이 미끄러지는 바람에 먹고 살 길이 막막했다. 어느 날 함께 공부하던 벗이 안동부사로 발령받자 선비는 염치 불구하고 그를 찾아갔다.
“이보게, 안동의 도서원(都書員) 자리를 내게 주게나.”
벗은 난감했다. 도서원은 세금 계산을 맡은 서리 중 선임자로 알짜 보직이었다. 안동은 향리가 센 고을이라 한양 유생에게 그 좋은 자리를 줄 것 같지 않았다. 그러나 유생은 자기에게 묘안이 있다며 기어코 응낙을 받았다.
유생은 벗이 부임하기에 앞서 먼저 안동에 찾아가 타지에서 온 향리 행세를 했다. 가끔 이청(吏廳)에 들러 일도 거들고 글도 써줬다. 게다가 성품까지 반듯해 보여 안동 향리들은 별 생각 없이 고을에 묵게 해주었다.
얼마 후 신임 부사가 부임했는데 얼마나 꼼꼼한지 문서에 조금이라도 실수가 있으면 엄하게 질책했다. 향리들은 부사의 닦달에 시달리다 못해 유생에게 도움을 청했다. 신기하게도 그가 올린 문서는 늘 무사통과였다. 안동 향리들은 차츰 유생에게 기댔고, 정식 향리로 추천까지 해주었다.
정식 향리가 된 유생은 재주를 한껏 발휘해 능력자로 자리매김했다. 결국 도서원 자리도 그이에게 돌아갔다. 유생은 2년 만에 만금을 끌어 모았고, 부사의 임기가 끝날 무렵 재물을 챙겨 안동을 떠났다.
오희문, <경상도 함안군 총쇄록>, 1889년
마산창에는 세금을 바치려는 백성 수백 명이 이미 와서 기다리고 있고 나머지는 뒤에서 계속 이어져 들어왔다. 되질을 할 때 나는 갑절로 자세히 살펴서 평미레질을 반드시 하게 했고, 창고지기에게 관례대로 한 되씩 줄 때에도 꼭 평미레질을 하게 했다. 납부를 시작한지 8일 만에 매를 한 대도 대지 않고 일을 마쳤다. 아마 이 조운창을 개설한 이래 처음 있는 일일 것이라고 한다. 인근의 창원군 세금 납부소에 가보았더니 채찍과 매가 낭자하고 장형을 치라는 소리가 그치지 않았다.
성종실록 1474년 윤6월 14일
대사간 정괄이 아뢰었다.
“세종조(世宗朝)에 선상노(選上奴)의 대립(代立)을 금지함이 매우 엄격하였습니다. 이제 들으니 선상노가 순번에 따라 한양에 노역하러 올 때 그 관아의 수령이 값을 독촉하여 징수하고 다른 사람을 대신 서게 하니 그 폐단이 적지 않습니다. 형조좌랑 김민은 선상노를 노역하는 곳에 보내지 않고 35구를 빼내 기생첩 소설오에게 주어 그 값을 거두었습니다. 외람되기가 이보다 심할 수가 있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