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제 정세를 읽지 못하고 나라를 위기로 몰아넣은
목소리만 큰 지배층의 무능함!
병자호란이라는 국난조차도 당쟁으로 몰아간 아집의 정치가들!
당시의 긴박한 상황을 그린 영화 남한산성
영화 감상 전과 후 언제들어도 유익한 이번 에피소드~
<인조실록> 1636년 2월 21일, 홍익한의 상소
“진실로 천자라 일컫고 큰 자리에 오르고 싶으면 스스로 제 나라에서 황제가 되고 제 나라에서 호령하면 되는 것입니다. 어째서 우리나라에 물어본 뒤에 황제의 일을 행하려 한다는 말입니까. 이는 우리를 호통치고 업신여기는 것이 분명합니다. 조선이 자기들을 높여 천자로 삼았다는 사실을 천하에 알리려는 것입니다. 그리 되면 전하께서는 무슨 면목으로 천하에 서시렵니까. 신의 어리석은 소견으로는 (후금) 사신을 죽이고 그 머리와 국서를 명나라 조정에 보내 형제의 약속을 배신한 것과 감히 천자의 호를 일컫는 것을 꾸짖어야 합니다. (이렇게) 예의의 중대함을 분명히 말하고 이웃 나라의 도리를 상세히 진술해야만 우리의 형세가 더욱 확장될 것입니다. 만일 신의 말이 망령되어 쓸 수 없다면, 신의 머리를 참하여 오랑캐에게 사과하소서.”
<인조실록> 1636년 2월 16일
용골대와 마부대 등이 서달 사람들을 거느리고 나왔다. 용골대가 의주 부윤에게 말하였다. “우리나라가 이미 대원(大元)을 획득했고 또 옥새를 차지했다. 이에 서달의 여러 왕자들이 대호(大號)를 올리기를 원하고 있으므로 귀국과 의논하여 처리하고자 한다.”
<인조실록> 1636년 12월 14일, 청나라의 습격
국왕의 가마가 숭례문에 도착했을 때 적이 이미 녹번동까지 왔다는 소식이 들어왔다. 임금이 남대문 루(樓)에 올라가 신경진에게 문 밖에 진을 치도록 명하였다. 이때 최명길이 오랑캐 진으로 가서 변동하는 사태를 살피겠다고 자원했다. 명길을 보내어 오랑캐에게 강화를 청하면서 그들의 진격을 늦추도록 하였다. 그 사이 임금은 수구문을 통해 남한산성으로 향했다. 변란이 창졸간에 일어났으므로 수행원 중에는 도보로 따르는 자도 많았다. 성 안 백성들은 부자, 형제, 부부가 서로 흩어져 그들의 통곡소리가 하늘을 뒤흔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