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동요의 주인공 백제무왕과 선화공주의 정체는 무엇인가?
그리고 그들이 묻혔다고 하는 익산 쌍릉의 진짜 주인은 누구인가?
역사칼럼니스트 권경률과 함께 추리하는 고대판 사랑과 전쟁!
<삼국유사>, ‘기이(紀異)’, 무왕(武王)
선화공주가 (유배) 떠날 때 왕후가 순금 한 말을 노자로 주었다. 백제에 이르러 그 금으로 살아갈 계책을 세우려고 했는데 서동이 웃으며 말했다.
“내가 어려서부터 마를 캐던 곳에 이와 같은 금덩이가 쌓여 있소.”
이에 공주는 그 보물을 부모님의 궁궐로 옮기자고 했고 서동은 수락했다. 용화산 사자사의 지명법사에게 구릉처럼 쌓인 금을 운반해 달라고 하자, 법사는 신통력을 발휘하여 하룻밤 사이에 신라 궁중으로 날라놓았다. 진평왕이 그 도술을 신기하게 여겨 더욱 존경하고 항상 글을 보내어 안부를 물었다. 서동이 이로써 인심을 얻게 되어 왕위에 올랐다.
어느 날 왕이 부인과 함께 사자사에 행차하다가 용화산 아래 큰 연못가에 이르렀는데, 미륵 삼존이 못 속에서 나와 수레를 멈추고 경의를 표하였다. 부인이 이곳에 큰 절을 세우고 싶다고 하자 왕이 허락하였다. 지명법사는 또 다시 신통력으로 산을 허물고 못을 메워서 평지를 만들었다. 여기에 미륵상, 전각, 탑을 갖춘 사원 3개소를 창건하고 이름 하기를 ‘미륵사(혹은 왕흥사)’라 하였다. 진평왕이 백공(百工)을 보내어 도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