출세의 기회는 변방에 있다!
저 멀리 함경도에서도 숨겨지지않는 이순신 대위의 능력과
쫓아내지 못해 안달, 기용하지 못해 안달난 조정 대신들 뒷담화!
청렴하고 유능했던 (사실은 백의종군 2번 한) 장교 이순신, 두번째 이야기.
<이충무공전서>, ‘행록’
계미년(1583년) 겨울에 함경도 건원보 권관이 되었다. 그 무렵 우을기내가 변방을 침입하여 큰 걱정이었지만 조정에서는 잡을 도리가 없었다. 공이 이곳에 부임하여 계략을 써서 꾀어냈더니 과연 우늘기내가 무리를 이끌고 왔다. 공은 복병을 배치해두었다가 그들을 사로잡았다.
그러나 함경도 북병사 김우서는 공이 혼자서 크게 성공한 것을 시기했다. 급기야 대장에게 보고도 하지 않고 함부로 행동한 것은 잘못이라고 장계를 올렸다. 조정에서는 원래 상을 주려고 했으나 북병사의 장계 때문에 중지하고 말았다.
결국 공은 훈련원 참군으로 승진하는 데 그쳤다. (우을기내를 잡은 일로) ‘이순신’이라는 이름이 많이 알려졌지만 권세가에 드나들지 않았기에 벼슬이 크게 뛰어오르지 못했다. 사람들이 이를 애석하게 여겼다.
<이충무공전서>, ‘행록’
병술년(1586년) 삼년상을 마치자 조정에서는 공을 오랑캐 땅에 바짝 붙은 조산 만호에 임명하였다. 정해년(1587년) 가을에는 녹둔도 둔전관도 겸직하게 되었다. 공은 이 섬이 외로이 떨어져 있는데다 수비하는 군사도 적은 것을 걱정하였다. 이에 함경도 북병사 이일에게 병력을 증원해 달라고 요청했으나 병마절도사가 들어주지 않았다.
8월에 적이 병력을 이끌고 와서 아군의 울타리를 에워쌌다. 붉은 옷 입은 몇 사람이 앞장서서 지휘하며 달려 왔으나 공이 활을 연달아 쏘아서 모두 쓰러뜨렸다. 뿐만 아니라 이운룡과 함께 추격하여 사로잡힌 우리 군사 60여 명도 되찾아왔다. 도중에 적의 화살이 날아와 왼쪽 다리를 다쳤지만 부하들이 놀랄까봐 몰래 화살을 뽑았다.
(이 사건으로 백성과 식량을 빼앗기자) 함경도 북병사 이일은 공을 죽여 입을 막으려고 구속했다. 북병사가 패전을 인정하는 조서를 받으려고 했으나 공은 반박했다. 여러 차례 병력 증원 요청을 했지만 병마절도사가 들어주지 않았다는 공문을 갖고 있으며, 또 적을 격퇴하고 추격하여 우리 군사들까지 구출했는데 어떻게 패전이냐는 것이었다. 결국 패전 책임을 벗었지만 공은 백의종군(白衣從軍)하게 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