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19년 3월 1일,
실낱같은 희망을 걸고, 목숨을 바쳐 조선이 독립국임을 천명한 민족대표, 학생, 상인
그리고 보통의 백성의 마음 속 이야기를 들어보는 시간!
특별게스트 천안홍보대사 김ㅇ씨와 함께하는 독립운동의 고장 천안 이야기도 많이많이 들어주세요~!
<기미독립선언서 - 민족대표 33인>
원문 : 오등(吾等)은 자(慈)에 아(我) 조선(朝鮮)의 독립국(獨立國)임과 조선인(朝鮮人)의 자주민(自主民)임을 선언(宣言)하노라. 차(此)로써 세계만방(世界萬邦)에 고(告)하여 인류평등(人類平等)의 대의(大義)를 극명(克明)하며, 차(此)로써 자손만대(子孫萬代)에 고(誥)하여 민족자존(民族自存)의 정권(正權)을 영유(永有)케 하노라.
한글 : 우리는 여기에 조선이 독립된 나라인 것과 조선 사람이 자주적인 국민임을 선언하노라. 이로써 세계 모든 나라에 알려 인류가 평등하다는 큰 뜻을 밝히며, 이로써 자손만대에 알려 겨레가 스스로 존재하는 정당한 권리를 영원히 누리도록 하노라.
미국 선교사 마티 윌콕스 노블의 일기 (2001년 공개)
“오늘은 조선에서 위대한 날이었다. 오후 2시를 기하여 중학교 이상의 모든 학교가 일제 지배에 항거해 수업을 거부했다. 나는 창문으로 긴 행렬이 궁궐 모퉁이를 돌아 행진하는 것을 직접 볼 수 있었다. 학생들은 손을 높이 들고 모자를 흔들며 만세를 외쳤다. 거리의 사람들이 동참하면서 그 기운찬 외침은 도시 전체에 울려 퍼졌다.”
<한국독립운동지혈사 -박은식>
우리나라 광무황제는 명성황후가 일본인들에게 피살되자 저들에 대한 원한이 이미 골수에 사무쳤는데, 그 위에 자신도 폐위당하고 나라까지 합병되자 무한히 통분하였다. 그는 비록 유폐되었다 하더라도 언젠가는 때를 타서 보복하려는 생각을 버린 적이 없었다. 왜놈들은 우리 황제를 일본 배격의 우두머리로 인정하고 제거하려는 생각을 가진 지가 오래였다.
때마침 유럽에서는 전쟁이 끝나 열국(列國)이 파리에서 평화회의를 개최하였다. 미국 대통령은 민족자결주의를 제창하였으며, 우리 민족도 용감하게 도약하여 독립운동을 벌이려고 하였다. 이에 앞서 일제는 영친왕을 일본 여인 방자(方子)와 결혼시키기로 하였는데, 기미년 1월 25일 혼례를 치른 다음 ‘신혼여행’이라는 명목으로 유럽을 유람케 할 계획이었다. 파리회의에 맞춰 한국과 일본이 동화되었다는 증거로 보여주기 위함이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