부정한 재물을 훔쳐 사회적 약자를 돕는 의로운 도적에서
동에 번쩍, 서에 번쩍 신출귀몰한 행적의 신비한 도적까지
한국인이 사랑하는 의적에 대한 오해와 진실에 대해
시시콜콜 파헤치는 본격 뒷담화 1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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낭독 1-1 / 연산군일기 1500년 10월 22일
영의정 한치형, 좌의정 성준, 우의정 이극균이 아뢰기를,
“강도 홍길동을 잡았다 하니 기쁨을 견딜 수 없습니다.
백성을 위하여 해독을 제거하는 일이 이보다 큰 것이 없으니,
청컨대 이때 그 무리들을 다 잡아들이소서.”
하니, 그대로 쫓았다.
낭독 1-2 / 연산군일기 1500년 12월 29일
의금부의 위관(委官) 한치형이 아뢰기를,
“강도(强盜) 홍길동이 옥정자(玉頂子)와 홍대(紅帶) 차림으로
첨지(僉知)라 자칭하며 대낮에 떼를 지어 무기를 가지고
관부에 드나들면서 거리낌 없이 행동하였습니다.
그 지역의 권농(勸農), 이정(里正), 유향소(留鄕所)의 품관(品官)들이
어찌 이를 몰랐겠습니까. 그런데 고발하지 아니하였으니
징계하지 않을 수 없습니다.
이들을 모두 변방으로 유배 보내는 것이 어떠하리까.”
하니, 전교하기를, “알았다.” 하였다.
낭독 1-3 / 중종실록 1513년 8월 29일
호조가 아뢰기를,
“충청도는 홍길동이 도적질한 다음에 유망(流亡)이 회복되지 않아
토지측량을 오래도록 못했습니다.
세금을 거두기가 어려우니, 올해는 측량하게 하소서.”
하니, 전교하기를,
“토지측량은 중대한 일이니 대신에게 물으라.” 하였다.
낭독 2-1 / 이익, <성호사설(星湖僿說)>
명종 때 임꺽정이 가장 큰 괴수였다. 그는 원래 양주 백성인데,
경기로부터 해서(海西)에 이르기까지 근방의 아전들이 모두
그와 은밀히 통해 있어, 관가에서 잡으려 하면 그 기밀이 먼저 누설되었다.
3년 동안에 몇 도(道)의 군사를 동원하여 겨우 잡았는데
양민으로 죽은 자는 이루 헤아릴 수도 없었다.
낭독 2-2 / 명종실록 1559년 4월 21일
삼공이 검상(檢詳)을 시켜 아뢰기를,
“한 백성이 적당(賊黨)을 고발했다가 도적들에게 붙잡혔습니다.
그 아들이 아버지를 구할 요량으로 자기가 고발했다고 둘러댔습니다.
적들은 촌가에서 밥을 지어먹고는 둥그렇게 둘러앉아
아들의 배를 갈라 죽였다고 합니다.
그의 충성과 효도가 지극히 아름다우니 포상하소서.”
하니, 아뢴 대로 하라고 답하였다.
낭독 2-3 / 명종실록 1561년 10월 6일, 사관의 사평
백성이 굶주림과 추위에 시달리며 하루도 목숨을 보전하기 어려워
조금이라도 더 살고자 도적이 됐다면 그것은 정치를 잘못했기 때문이요,
그들의 죄가 아니다. 모이면 도적이요, 흩어지면 백성이다.
낭독 2-4 / 명종실록 1555년 10월 11일, 조식의 상소
"전하의 나랏일이 그릇되었고, 나라의 근본이 망했으며,
하늘의 뜻은 떠나버렸고, 민심도 이미 이반되었습니다.
어머님께서 생각이 깊으시기는 하나 한낱 궁중의 과부에 지나지 않고,
전하께서는 어리시어 다만 선왕의 외로운 아드님일 뿐이니,
어찌 감당하시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