진정한 친구란 무엇일까. 나의 모든 점을 보여주어도 부끄럽지 않고, 어려운 일이 있어도 쉽게 깨지지 않는 그런 관계가 진정한 친구가 아닐까? 우아하고 단정한 글로 유명한 ‘이덕무’와 그의 멋진 친구들이 나눈 이야기들을 통해 생각해보는 ‘진정한 친구’의 의미. 낭독한국사가 생각의 문을 열어드립니다!
이덕무, <선귤당농소(蟬橘堂濃笑)>
간절히 원하지만 다정한 벗을 오래 머물게 할 수 없는 마음은 꽃가루를 묻힌 나비를 맞는 꽃과 같다. 나비가 오면 너무 늦게 온 듯 여기지만 조금 머무르면 소홀히 대하고, 그러다 날아가 버리면 다시 나비를 그리워하기 때문이다. 마음에 맞는 시절에 마음에 맞는 벗과 만나 마음에 맞는 말을 나누며 마음에 맞는 시문을 읽는 것, 이것이야 말로 더할 나위 없는 즐거움이다. 그러나 어째서 그런 지극한 즐거움은 드문 것인가? 이러한 즐거움은 일생에 단지 몇 번 찾아올 뿐이다.
이덕무, <영처고(嬰處稿)>, ‘간서치(看書痴)전’
목멱산 아래 어리석은 사람 하나가 살았다. 말씨는 어눌하고, 성품은 졸렬하고, 게을러 세상일을 알지 못하였으며, 바둑이나 장기 같은 잡기는 더더욱 알지 못하였다. 남들이 욕을 하여도 변명하지 않았고, 칭찬을 하여도 잘난 척하지 않았으며, 오직 책 보는 일만을 즐거움으로 삼았기에 춥거나 덥거나 배고프거나 병드는 것에도 전혀 아랑곳하지 않았다.
어릴 적부터 스물한 살이 될 때까지 하루도 선인들의 책을 손에서 놓은 적이 없었다. 그의 방은 매우 작았지만 그래도 동쪽, 서쪽, 남쪽 삼면에 창이 있어, 동쪽에서 서쪽으로 해 가는 방향을 따라 빛을 받아가며 책을 읽었다. 행여 지금까지 보지 못했던 책을 대하게 되면 번번이 기뻐서 웃곤 했기에, 집안사람들 누구나 그가 웃는 모습을 보면 기이한 책을 얻은 줄 알았다.
특히 두보의 오언율시를 좋아하던 그는 골똘히 시를 생각할 때면 앓는 사람처럼 읊조리기도 하였다. 그러다가 심오한 뜻을 깨우치기라도 하면 매우 기뻐하며 일어나 이리저리 왔다갔다하기도 하였는데, 그 소리가 마치 갈가마귀가 우짖는 듯하였다. 때로는 조용히 아무 소리 없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는 뚫어지게 바라보기만 하다가, 때로는 꿈꾸는 사람처럼 혼자 중얼거리기도 하였다. 이에 사람들이 그를 가리켜 ‘간서치(看書癡)’, 책만 보는 바보라 불렀지만 이 또한 기쁘게 받아들였다.
이덕무, <아정유고(雅亭遺稿)>, 이서구에게
내 집에서 가장 좋은 물건은 단지 <맹자> 일곱 편뿐인데, 오랜 굶주림을 견디다 못해 끝내는 돈 200전에 팔아버렸소. 그 돈으로 밥을 잔뜩 해먹고 희희낙락하며 영재 유득공에게 달려가 크게 자랑했다오. 그런데 영재도 굶주린 지 이미 오래 되었던 터라, 내 말을 듣고는 즉시 <좌씨전>을 팔아서 남은 돈으로 나에게 술을 사주더군. 이는 맹자가 직접 나에게 밥을 지어 먹여주고 좌구명이 손수 나에게 술을 권한 것과 무엇이 다르겠소. 그래서 맹씨와 좌씨를 한없이 칭송했다오. 그렇지만 우리가 1년 동안 이 책들을 그저 읽기만 했다면 어떻게 조금이나마 굶주림을 면할 수 있었겠소. 그제야 나는 알게 되었다오. 책을 읽어 부귀를 구하는 것은 모두가 요행을 바라는 술책이니, 당장 책을 팔아서 한 번만이라도 실컷 취하고 맘껏 먹고 싶은 것이 솔직한 심정이지, 가식으로 꾸미는 거짓이 아니라는 것을 말이오. 아아, 그대는 어떻게 생각하시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