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채널 권경률

낭독 한국사 74회 ‘결코 잊을 수 없는 독립투사, 김원봉’ 3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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남북 평화의 시대, 종전을 이야기하는 지금도 여전히 인정받지 못한 애국자가 있습니다. 조국과 민중을 위해 군인으로 정치가로 독립운동가로 투쟁하던 겸허한 진보주의자 김원봉의 인생을 추적하는 시간. 역사칼럼니스트 권경률과 함께하시죠!
[곽말약, <자서전>, ‘홍파곡’]
일본 조계지는 황량한 공동묘지를 방불케 했다. 폭파시키기로 예정돼 있었기에 주민들은 오래 전에 떠나버렸다. 길가의 담벽이나 큰길 위에 콜타르로 굵직하게 써놓은 일본어 표어가 눈길을 사로잡았다. “병사들은 전선에서 피를 흘리고, 재벌은 후방에서 향락에 빠져 있다.” “병사들의 피와 목숨, 장군들의 금메달.” 이 표어는 어제 내가 만든 글귀인데, 담벼락과 물탱크, 길바닥에 벌써 써놓았다.
그것은 조선의용대 친구들에게 감사해야 할 일이었다. 그들은 철수를 며칠 앞둔 채 이 작업을 맡았다. 제3청에서 만든 대적표어구호집과 내가 임시로 만든 몇 가지 자료를 근거로 쓸 수 있는 모든 곳에다 표어를 써놓은 것이다. 내가 직접 본 바에 따르면 그들은 한구시를 문자 그대로 하나의 정신적 아성으로 만들어 놓았다. 삼삼오오 조를 이루어 페인트통, 콜타르통을 들고 또 사다리를 메고 촌분을 아끼며 일에 몰두하고 있었다. 그것은 나를 감동시킨 일이기도 했다. 그들은 모두 조선의용대의 벗들이었다.
[김삼웅, <약산 김원봉 평전>]
김원봉이 구속된 것은 1947년 3월 22일 경이었다. 이 무렵 전국노동조합평의회의 주도로 24시간 총파업이 단행되었는데 이를 빌미로 미군정 치하 경찰과 우익 청년단체들이 민주주의민족전선과 그 산하단체들을 일제히 습격했다. 이 사건으로 2000여 명이 검거되었다. 김원봉도 이때 붙잡혀가서 4월 2일 군사법원에 섰다. 죄목은 포고령 위반이었다.
당시 김원봉은 수도경찰청장 장택상의 지시로 일제 악질 고등계형사 출신인 노덕술에게 체포되었다. 장택상은 과거 부친 장승원이 독립운동 자금 납부를 거부하다가 대한광복회 회원들에게 처단되었기에 김원봉과 그 세력을 증오했다. 결국 김원봉은 경찰서에서 노덕술에게 온갖 고문과 모욕을 당하고 풀려났다. 그 길로 그는 의열단원 유석현에 가서 꼬박 3일간 울었다고 한다.
김원봉은 일제 군경이 엄청난 현상금을 걸고 붙잡으려 했던 항일 독립투사다. 그런 그가 해방된 조국에서 일제 악질경찰과 친일파들에게 붙잡혀 철창에 갇히고 이루 말할 수 없는 수모를 겪었으니 3일 낮과 밤을 울지 않을 수 없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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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채널 권경률By c7plannings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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