영화 <동주>는 영화의 작법 중에 효과적이라는 작법을 적절히 잘 사용해서 완성도가 상당히 높다는 생각이 들었어요. 사촌인 송몽규에 대한 윤동주의 미묘한 라이벌 의식, 열등감들이 잘 드러나는 기법들을 활용을 했거든요. 영화에서는 동주를 끊임없이 내적 갈등에 휩싸여 있는 인물로 그리는데, 그의 고민들에 적지 않게 공감이 되면서도 생각보다 윤동주 시인이 강한 인물이었을 수도 있겠다 싶었어요. 윤동주 시인의 일대기를 보면 어렸을 적에 웅변도 하고, 축구부 활동도 하고 신사참배에 반대해서 학교도 그만두고 그랬거든요. 그런데 그런 사람이 이렇게 서정적이고 차분한 시를 쓸 수 있었다는 것이 오히려 더 무섭다는 생각도 들었어요. 굳이 일본으로 유학을 가서 조선어로 시를 썼다는 것도 그렇고요. 물론 영화는 감수성이 예민한 한 청년의, 시를 쓰겠다는 그 꿈조차 집어삼키는 군국주의, 전체주의, 파시즘을 보여주고 있죠.
그런 엄혹한 시기에 조선어로 그렇게 서정적인 시를 썼고 일본으로 유학을 갔지만 ‘참회록’같은 시를 보면 그걸 정당화하지 않고 계속 고민했다는 것을 느낄 수 있는데 이런 부분이 윤동주 시인이 어떤 사람이었는지 생각해보는 단서를 제공하는 것 같아요. 사실 역사적으로 봤을 때 윤동주 시인이 과연 독립운동가였는가에 대한 의문이 없는 것은 아니거든요. 하지만 그가 용정, 명동촌 같은 만주의 독립운동기지에서 태어나 자랐던 것을 생각하면, 송몽규에 비하면 다소 활동적이지 않았을 수는 있지만 환경 자체가 충분히 독립운동에 대해 고민할 정도의 토양은 제공했을 수 있다는 것이죠. 그렇다고 그가 순수문학을 꿈꾸는 서정시인이었느냐고 한다면, 조선어로 시를 쓰고 그걸 출간하기 위해서 계획을 세우고 실현해서 결국 자신의 조선어로 된 시집을 남긴 것으로 봤을 때 그것도 아닐 수 있다는 것이거든요. 결국 영화 <동주>에서 그려낸 청년 윤동주의 모습은 감독님이 바라보고 해석한 윤동주의 모습일 테니 여러 각도에서 윤동주 시인을 바라보는 노력을 해 보시는 것도 좋을 것 같아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