고려 최고의 문제아, 충혜왕

우리 역사를 살펴보면 왕의 권력을 앞세워 신하들과 백성들을 핍박한 왕을 만날 수 있습니다. 그 중 대표적인 인물이 조선의 연산군, 그리고 고려의 충혜왕입니다. 2년 전 모 드라마의 주인공을 이 충혜왕으로 설정해 큰 논란을 빚기도 한 인물이죠. 충혜왕은 실로 고려 왕실 최고의 문제아라 할 수 있습니다. 이미 원나라에서 어린 시절을 보낼 때부터 술을 즐기고 여인들과 놀기를 좋아했던 충혜왕은 아버지 충숙왕조차 ‘무뢰배, 건달’이라 부를 정도였습니다. 왕위에 오른 충혜왕은 계속해서 방탕한 생활을 이어갔습니다. 아버지 충숙왕의 후궁이나 왕실 여인들 뿐 아니라 외삼촌의 여인까지 건드리는 등 주색에 빠져 지냈습니다. 그러다 원 세조의 증손녀이자 아버지의 첩. 즉 자신의 양어머니라 할 수 있는 경화공주마저 겁탈하기에 이르렀습니다. 결국 원에게 이 사실이 알려져 2년 만에 왕위에서 쫓겨나 원에 압송되어 투옥되었습니다. 한 나라의 왕이 감옥에 갇히는 일이 발생한 것입니다. 감옥에 갇혀있던 충혜왕은 원의 정치적 혼란을 틈 타 6개월만에 복위에 성공하였습니다. 그러나 그의 행실은 여전히 고쳐지지 않았고 결국 기철을 비롯한 권문세족의 고발로 다시 원에 잡혀가 유배형에 처해졌으며 귀양 가던 중 죽음을 맞았습니다. 기록에는 그의 죽음을 슬퍼하는 사람은 한 명도 없었다고 쓰여 있습니다. 그만큼 자신의 욕망을 위해 백성과 신하들을 신경 쓰지 않았던 왕을 백성들도 귀하게 여길 수 없었던 것이지요.

후에 사관은 충혜왕을 ‘총명하기는 하나 그 재능을 제대로 쓰지 못하고 황음무도하게 행동하였으니 천자에게 벌을 받아 죄수의 몸으로 유배 중 객사도 마땅하다’고 평가하기도 하였습니다.

고려의 마지막을 힘겹게 짊어져야 했던 공민왕

고려 역사에서 가장 유명한 왕으로 꼽히는 공민왕은 고려에 뿌리 박힌 원의 그림자를 걷어낸 왕으로 잘 알려져 있습니다. 반원정책과 더불어 부인 노국대장공주를 사랑했던 순정파로 유명하지요. 또 공민왕이 고려의 왕으로 즉위한 때는 세계제국 원의 힘이 약해지고 고려 또한 역사 속에서 쌓여온 여러 문제들이 드러나는 시기, 그러니까 한 시대의 종말기였습니다. 원의 힘이 약해졌기 때문에 자신 있게 기철과 같은 부원세력(원의 권력을 등에 업고 권력을 휘두르던 고려 귀족 세력)을 숙청하고 원의 풍습 대신 고려의 풍습을 택할 수 있었지만 또 원의 힘이 약해졌던 탓에 여기저기서 일어나는 원의 반란군 진압에 군대를 동원해야했고 홍건적의 공격에 왕실이 안동까지 피난을 가야하기도 했습니다. 왜구의 노략질도 점점 심해졌고요. 공민왕 혼자서는 감당할 수 없는 일들이 계속해서 일어났으므로 자신을 지지하고 함께 헤쳐나갈 세력을 키우려 하였지만 시간은 그를 기다려주지 않았습니다. 결국 노국대장공주의 죽음 이후 후사 문제로 복잡한 사건을 만들어낸 공민왕은 자신의 호위대였던 자제위에 처참하게 살해당하고 말았습니다. 이렇게 고려의 마지막 불꽃은 사그라졌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