VOA 이야기 미국사, 오늘은 1920년대 미국에 대해 계속 전해 드립니다. 보스턴 경찰 파업 이후 캘빈 쿨리지는 미국에서 유명한 이름이 됐습니다. 공화당 내에서도 전국적인 차원에서 관심을 가졌고, 결국 1920년 대통령 선거에서 공화당 대선 후보와 함께할 부통령 후보로 캘빈 쿨리지를 선택했습니다. 워런 하딩 대통령이 임기 중에 갑자기 사망하자 캘빈 쿨리지 부통령은 대통령 선서를 하고 아내와 두 아들과 함께 백악관으로 들어왔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함께 하시죠.
VOA 이야기 미국사, 오늘은 1920년대 미국에 대해 계속 전해 드립니다. 캘빈 쿨리지 대통령은 1872년 7월 4일, 미국 북동부 버몬트주의 작은 마을에서 태어났습니다. 농부이면서 마을의 정치 지도자인 아버지 아래서 평범하게 자랐고, 말이 없고 조용한 소년이었습니다. 쿨리지 대통령은 어린 시절, 12살 때 어머니를 병으로 잃었습니다. 몇 년 뒤에 하나밖에 없는 여동생마저 세상을 떠나면서 외롭게 자랐는데, 아버지와 둘이 의지하며 살면서 어려서부터 아버지와 관계가 돈독했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함께 하시죠.
VOA 이야기 미국사, 오늘은 1920년대 미국에 대해 계속 전해 드립니다. 워런 하딩 대통령은 행정부 내각을 구성할 때 뛰어난 능력을 갖춘 인재들을 뽑았습니다. 찰스 에반스 휴스 국무장관과 앤드루 멜론 재무장관, 허버트 후버 상무장관을 임명한 것은 훌륭한 선택으로 평가받고, 찰스 도스 예산국장이나 헨리 월러스 농무장관을 자리에 앉힌 것도 좋은 인사 정책으로 꼽힙니다. 하지만, 하딩 대통령이 임명한 행정부 장관 명단에는 정직하지 못한 인물도 포함됐습니다. 자세한 이야기 함께 하시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