총선 열기가 뜨거워지고 있다. 오늘 여야 공천 결과가 발표되면 정치권은 더욱 뜨겁게 달구어 질 것이다. 반면 국민들의 실망과 비판의 목소리도 커지고 있다.
그것이 집권당의 쇄신이냐? 공천개혁이 달랑 그거냐? 야권연대 물 건너가는 거냐, 그러다가도 국회의원 밥그릇 숫자 늘리는 건 척척 죽이 맞냐? ..... 등등 여야 할 것 없이 욕을 먹는다. 왜 정치인들은 주는 것 없이 미울까?
심리학에서는 투사(PROJECTION)라는 개념이 있다. ‘투사’는 사람의 심리 상태가 세상을 대하는 태도나 방식에 영향을 미치는 것을 의미한다. 야한 상상을 자주 하는 사람이 선정적인 동영상을 보면 괜히 더 질겁하며 유난히 진저리치는 것이나 겁 많은 사람이 유독 큰소리치며 가슴을 내미는 것도 일종의 투사죠.
‘투사’는 자신이 원치 않는 감정이나 모습이 자기 안에 있을 때 그것을 불쾌히 여기며 역으로 오버하는 일종의 자기 방어이다. 또는 자기가 원치 않는 모습이 자기가 기대를 걸고 믿었던 사람에게 담겨 있음이 드러났을 때 분노로 바뀌는 것도 일종의 투사심리이다.
내가 해 봐서 안다고? 차라리 모르는 게 낫다
투사와 비슷한 유형 중에 내가 이러니 저 사람도 그럴 것이라는 ‘기대’의 감정도 있다. 내가 재밌게 본 영화는 당연히 남도 재미있어 할 거라 여기는 것이 투사에서의 ‘기대’심리이다. 이명박 대통령이 유행시킨 ‘내가 해 봐서 아는데 ......’도 이런 종류이다. 내가 겪어서 알게 된 거나 감정을 그 상황을 겪는 다른 이들도 모두 똑 같이 공유할 거라 여기는 것이다. 이것을 ‘가정된 유사성 편향(assumed similarity bias)’이라고 부르기도 한다.
여기서 더 나아가면 “내가 겪어봐서 잘 알아, 그리고 그걸 멋지게 극복하고 여기 이렇게 송공한 모습으로 당당히 서 있잖아, 그런데 당신은 왜 극복하지 못하고 투덜대고 징징대기만 하는 것이야?” 이렇게 사람과 상황을 대하기도 한다. 자신과 똑같아야 할 상대가 그렇지 못한 경우를 두고 무능력과 의지박약, 아니면 게으름 때문이라고 단정할 위험이 있다. 대통령이 '내가 고생해 봐서 다 안다'고 쉽게 넘기는 듯한 모습을 보면 정말 주는 것 없이 미울 수 있다. 이명박 대통령이 자신감을 내비칠수록 국민과 멀어지는 것도 여기서 비롯되는 거라 할 수 있다.
투사는 열등감으로도 나타난다. 대통령이나 국회의원, 공천 달라고 아우성치는 정치지망생들을 보면서 열등감과 자조적인 생각들을 떠올릴 수 있다. “참 나 저런 인간들이 뭘 하겠다고 ...... ?” 이런 생각들이다.
‘저 정도 지적 수준에 언변, 그리고 도덕적 결함을 지니고서도 내가 이루기 불가능한 자리를 차지하고 있다’는데 대한 반발이 생긴다. 이렇게 부정적 감정이 시작되면 한 번에 끝나지 않는다. 일하거나 뉴스를 보다 문득 억울한 생각이 떠오르기 일쑤이다. 그러다 보면 뉴스를 접할 때도 부정적으로 쓴 기사에 확 끌리며 집착하게 된다.
물론 그 반대의 경우도 당연히 존재한다. 숱하게 드러나는 잘못된 정책과 그 후유증, 숱하게 내놓는 해명인지 변명인지 모를 뻔한 설명을 들으며 몇 년을 보냈다. 그러면 이제는 알만 한데도 ‘묻지마 지지’를 무조건 보낸다면 그것도 문제가 있다. 아직도 대박성공을 이룬 사람에 대한 열등감과 맹목적 숭앙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해야겠다.
너무 목표를 높게 잡는 것도 어려움을 자초하게 된다.
반에서 20등하는 자녀에게 ‘다음달에 15등 안으로 올라가도록 해보자’고 등을 토닥거려주면 해낼 수 있다. 그러나 ‘다음달에 3등 안에 못 들면 너 죽고 나 죽는다’ ...... 이건 하라는 이야기인지 말라는 건지 애매해진다. 비현실성으로 인해 오히려 동기부여가 전혀 안 된다. 그런데 그걸 ‘네가 열심히 안 해서 그래, 다음 번엔 성공시켜, 다시 해봐’ ..... 이렇게 무리한 목표 설정을 반복한다면 실패도 반복한다. 이걸 ‘자기패배적 악순환’이라고 부른다.
이명박 정부가 7.4.7. 공약이라는 걸 내걸었다. 경제성장 7%, 국민소득 4만 달러, 세계 7대 강국 ..... 엄청난 도약에 도약을 거듭해야 가능한 목표인데 ‘내
임기 중에 해치운다’라고 큰소리친다. 대통령이 ‘747 왜 못해 해,해,해’하면 관료들은 말도 안 되는 소리 한다는 거 죄다 알지만 그 앞에서 고개만 끄덕거려 준다. 방법도 없고 실제 목표로 여기지도 않는다. 목표를 낮춰서 실행 가능하도록 잡으면 되는데 고집과 체면 때문에 하지 않는다. 정부 관료사회는 겉돌고 레임덕이 들이 닥치며 이제는 그냥 세월만 가라가 된다.
한 사람의 국민은 하나의 민주주의 !
자기패배적 악순환은 유권자도 반복한다. 엄청나게 훌륭한 대통령, 국무총리, 국회의원, 당 대표를 뽑아 맡기면 된다고 생각하는 게 문제이다. 그렇게 훌륭한 사람이라는 게 사실 없다. 어쩌면 언론과 유권자 스스로 그려낸 이미지일 뿐이다. 그런데 훌륭한 지도자에 매달리고 그래서 실망하고 더 훌륭한 지도자 없나 이러 저리 또 두리번거린다. 늘 헤매 봐도 거기가 거기이다. 그저 말 잘 듣고 정직한 대표를 뽑아 국민 통제 하에 두고 국민이 통제하는 시스템이 잘 가동되나 점검하고 국민의 정치의식이 커져야 한다.
국민 통제 시스템 중에 가장 중요한 게 언론이다. 지금 방송사 KBS, MBC, YTN, 연합뉴스까지 파업투쟁에 나섰다. 그동안 언론 구실을 전혀 못하고 어용 낙하산 사장에게 눌려 언론 구실을 못해왔다는 뼈아픈 반성과 함께 방송통신 동시파업투쟁이 최초로 벌어지고 있다. 언론으로서 제 길을 찾겠다고 부산일보, 국민일보도 파업투쟁 중이다.
민주주의 시스템이 심각하게 고장 나 있었다는 증거이다. 이런 상황을 살피고 개인의 심리적 편중을 피해 정치적으로 균형을 잡고 합리적 판단을 내리는 것이 유권자의 책임이다. 그러지 않으면 쉽게 정치적 선동에 끌려간다. 정파마다 온갖 주장을 내놓고 언론 역시 교묘하고 요사(?)스런 제목으로 국민의 눈을 속인다. 이제 애국심과 안보의식, 미래에 대한 불안을 자극하며 정치적 이득을 취하려 할 것이다. 유권자의 의지와 노력 없이는 균형을 잡을 수 없다. 유권자인 나 자신은 얼마나 객관적이고 순수한지를 점검하면서 좋은 후보를 찾아야 한다.
그 나라의 민주주의는 국민의 수준을 넘어서지 못한다는 80년대의 자조적인 유행어를 기억하실 것이다. 그런 점에서 선거는 우리 자신과의 싸움이기도 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