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BS Radio 음악FM 93.9MHz 매일 18:00~20:00
Share 배미향의 저녁스케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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얼마 전 언니가 농사지은 호박고구마를 보내줬는데 우리 네 가족이 먹기엔 상당히 많은 양이었습니다. 오래 두고 먹기엔 마땅히 보관할 만한 곳도 없고...게다가 언니가 농사지은 거 팔아주려고 시댁에 한 박스, 친구네 집에 몇 박스, 다 보내준 터였습니다. 우선은 그냥 받아먹기 죄송해서 시골언니께 용돈을 보내 드리고 문득 떠오른 생각이‘나눔’이었습니다. 이곳에 이사 온지 5년이 다 되가는데 딱히 이웃집에 가본 적도 없고, 그저 엘리베이터에서 만나면 눈인사 정도만 하지만 그래도 어느 정도 얼굴은 알고 지내니 그 이웃들께 나눠드리자 싶었습니다. 우리 옆집, 아랫집, 그 아래 두 집, 윗집 두 집, 맞다! 우리 동, 청소해 주시는 청소여사님께도 한 봉지. 적당한 크기의 종이 백 열개를 찾아 고구마를 담았습니다. 그리고 메모를 썼습니다. 집집마다 초인종 누르기도 그렇고..게다가 우리 윗집은 아기가 있는데 혹시 깰까봐...‘안녕하세요? 시골에서 언니가 농사지은 고구마를 많이 보내주셔서 이웃 분들과 나눠 먹으려구요. 지난주 캔 거라 베란다에 며칠 말렸다가 드시면 더 좋을 거 같아요. 환절기 건강 잘 챙기시고 행복한 가을 보내세요.’그렇게 이웃집 현관 앞에 조심스레 배달을 마쳤습니다. 그리고 청소하는 여사님께도 고구마를 전해드리고 나니 어찌나 마음이 뿌듯하던지!! 그리고 엘리베이터에서 이웃을 만났습니다. “혹시 고구마 주신 분 맞으세요?”하면서 그렇지 않아도 고구마 사려 했다고 정말 고맙다고 인사를 합니다. 고구마 몇 개로 즐거운 미소를 선사한 행복한 시간이었다. 이 가을, 우리 이웃들도 모두 건강하고 진심으로 행복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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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가 고등학교 때 아버지의 부도로 아버지는 지방으로 가시고 엄마가 저희 형제를 키우셨습니다. 엄마는 식당에서 일하고 저는 새벽에 신문을 돌렸습니다. 어느 날 신문을 가지러 나온 선생님과 마주쳤는데 "잠깐 집으로 들어와라." 하시기에 들어가니 김밥 3줄을 호일에 말아 주시며 동생이랑 먹으라 하셨습니다. 선생님은 장애인이셨습니다. 칠판에 "일체유심조 : 모든 것은 마음이 지어낸다." 는 뜻의 글을 쓰신 후 "내가 정상적인 몸은 아니지만 마음은 지극히 정상인이다. 우리 앞으로 잘해 보자." 하시던 선생님. 그리고 2학기 초 수학여행을 가야하는데 저는 갈수가 없다고 말씀드리자 "학교에서 한반에 한명씩 무료로 수학여행 지원을 해준다고 하니 같이 가자." 하셨습니다. 나중에 알고 보니 선생님 자비로 내주신 것이었습니다. 엄마가 식당에서 일하다가 허리를 다쳐 저는 학교를 가지 않고 자동차 수리정비소에 들어가 돈 버는 일을 했습니다. 어느 날 선생님이 불편하신 다리로 계단이 높은 저희 집에 갔다가 제가 있는 곳을 오셨습니다. "여기서 일하느라 학교를 못나왔구나! 집에가 보니 아버지도 다시 오셨고 지금 네가 고2인데 공부를 잘하니 장학생으로 그리고 대학등록금 면제가 되는 대학을 가자! 나는 너보다 더 어려운 환경이었고 한쪽발이 장애인이어서 힘들었지만 나는 더 강한 마음으로 이겨냈단다." 그렇게 저는 대학을 장학생으로 졸업하고 회사에 입사를 하게 되었습니다. 그리고 어느 날 동창이 전화로 "선생님이 암으로 병원에 입원하셨대.”하길 래 병원으로 갔습니다. "늦게 알게 되었어요! 죄송해요." 하자 제 손을 잡으며 "많이 보고 싶었다." 하시는데 눈물이 왈칵 쏟아졌습니다. 그 뒤 강원도로 내려가 고구마 농사를 하시던 선생님은 매년 고구마를 저희 집에 보내주곤 하셨는데.. 무엇이 그리 급하셨는지 하늘나라로 가셨습니다. ‘선생님 저를 위해 해주셨던 모든 말씀 가슴에 간직하며 살겠습니다. 이경희 선생님. 감사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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엄마는 굴 국밥집을 하셨습니다. 그래서 엄마한테는 늘 굴 냄새가 났습니다. 어느 날 학교에서 참관 수업이 있었습니다. 엄마는 점심시간에 식당일이 제일 바빴기에 나는 엄마가 오지 않을 거라 생각했습니다. 6학년 마지막 봄, 일 학기 참관수업이었고 나는 여느 때처럼 국어 시간 발표할 시를 준비했습니다. 고마운 사람에 대한 시였습니다. 엄마에 대해 쓰고 있었습니다. 아버지가 아프셨기에 엄마가 늘 일을 하셨습니다. 엄마는 통영에서 해산물로 장사를 하십니다. 엄마의 손이 굴과 톳으로 인해 차가운 얼음물에서 퉁퉁 부어 이제는 굵고 빨간 손이 되었습니다. 나와 동생을 키우느라 늘 고생하시는 엄마에게 나도 커서 꼭 보답해 드리고 싶다는 내용이었습니다. 그런데 많은 엄마들이 서 있는 교실 뒤에서 ‘어디서 굴 냄새가 나네. 어디서 비린내가 나. 어디야? 아유, 여기 못 있겠어.’앙칼진 여자의 목소리, 뒤를 자세히 보니 엄마가 서 계셨습니다. 그 바쁜 오전 시간에 엄마는 나를 보러 와 주셨던 겁니다. 엄마는 고개를 들지 못하고 있었습니다. 그 순간 선생님이 나의 번호를 부르며 발표하라고 하셨습니다. 나는 떨리는 목소리로 발표를 했고 선생님은 크게 박수를 쳐 주셨습니다.‘이렇게 훌륭한 어머님이 있기에 우리 반에 똑 소리 나는 부반장이 있었네요. 감사합니다. 경화 어머님께 박수’엄마는 여전히 고개를 떨 구고 계셨지만 나는 알 수 있었습니다. 엄마가 행복한 미소를 짓고 계시는 걸. 그 후 엄마는 동생의 참관수업도 가셨고 온몸에서 퍼지는 굴 냄새를 부끄러워하지 않으셨습니다. 동생이 대학을 들어가고 나서야 엄마는 가게 문을 닫으셨지만 아직도 엄마는 통영에서 굴을 까십니다. 나는 세상 어떤 두려움도 겁나지 않습니다. 우리 엄마가 있으니 말이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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오늘 24일은 결혼기념일입니다. 지난 19년 결혼기념일에는 남편이 20주년을 미리 축하하자고 홍콩의 멋진 야경과 함께 와인을 마시자 해서 여행을 갔었습니다. 그런데 멋진 야경은커녕 저녁엔 추워서 덜덜 떨었고 자신의 의견을 따라주지 않는다고 짜증을 내는 남편 때문에 여행 내내 툴툴거리면서 다녔습니다. 그렇게 19주년 기념일이 우리의 마지막 여행이 될 줄도 모르는 체 말입니다. 이제 제 곁에는 툴툴거리는 남편도 없고 더 이상의 부부 여행은 갈 수가 없게 되었습니다. 고등학생이었던 아이들도 장성해서 모두 내 곁을 떠났고 남은 것은 나 자신과 새로 입양한 유기 묘 한 마리뿐입니다. 예전에 17년 5개월을 키웠던 고양이가 올해 초 무지개다리를 건너고 한동안 많이 힘들었습니다. 퇴근 후 문을 열고 들어서면 어디선가 뛰어와 부비부비하면서 야옹거릴 것 같고 치즈를 먹으면 자기도 달라고 야옹거리는 것 같아 한동안 치즈도 못 먹었습니다. 그렇게 열 달이 지났고 새로운 고양이가 지난번 아이처럼 비 오는 날 저에게 왔습니다. 미미가 보내준 아인가봅니다. 아직 어린 고양이는 구석에 숨어 누가 오는지 확인하면서 불안한 모습을 감추지 못합니다. 오늘은 결혼한 지 36년 되는 날이지만, 이젠 옛 추억으로 간직하고 예쁜 것들만 기억하며 새로 우리 집에 온 “나비”와 함께 오랫동안 건강하게 살아가기로 마음먹기로 했습니다. 나비야 엄마랑 오래오래 함께 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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수업 중에 휴대폰이 울렸다
당황해서 스피커를 눌렀다
할매 목소리가 교실에 생중계됐다
핸우가? 할매다
와 말을 안하노? 여보시오, 여보시오
스피커를 끄려고 하자 선생님이 말렸다
애들이 킥킥댔다
나는 할매한테 끊으라고 속삭였다
안 들린다, 더 크기 말해라
니 아침에 타닝매까통가 뭐시기 안사 준다꼬
삐끼가 밥도 안 묵고 내뺐제?
자꾸 그카믄 우짜노
할매가 니 좋아하는 쏘세지 넣고
도시락 싸 왔다, 나온나
배고플 낀데 요거 묵고 해라
애들이 책상을 두드리며 웃음을 터뜨렸다
됐어, 수업시간이야, 끊어
맞나? 잘됐네. 그카믄 선상님 좀 바까 봐라
선생님이 손을 내밀었다
활짝 웃으며 상냥하게 전화를 받았다
나는 얼굴이 홧홧 달아올랐다
우리 핸우 땜시 선상님 애 마이 묵지요
죄송합니대이
철이 없어 그카지 나쁜 아는 아이라요
잘못하면 막 뭐라 카이소
잘 부탁드립니대이
선상님만 믿겄십니대이
할매는 지금 통화하면서 꾸벅꾸벅 절할 게 틀림 없다
아, 할매 때문에 창피해 미치겠다
식은땀이 흐른다
네네, 현우 할머님 잘 알겠습니다
걱정 마시고 건강하셔야 해요
선생님은 미소를 띤 채 휴대폰을 돌려준다
난 이제 죽었다 생각했는데,
아니다
현우는 좋겠네
이렇게 걱정해 주시는 할머니가 계셔서, 하고는
얼른 나가보라고 손짓한다
나는 교문 쪽으로 달음박질쳤다
교문 앞에서 할매가 도시락을 흔들며
함박 웃는다
창밖으로 애들이 얼굴을 내밀고 팔을 흔들며
함성을 지른다
우리 할매 오늘 스타 됐다
갑자기 눈이 맵다
코도 맵다
에잇, 이따 집에 가서
할매한테 한바탕 퍼부을 거다
정연철 시인의 <교실에 할매 잔소리가 생중계 되다>
세상에 치고, 사람이 미운 그런 헛헛한 날엔
나만을 바라봐 주고 위해주는 마음이 그리워집니다.
할머니처럼 촌스럽고, 투박해도 한없이 푸근한 마음,
잔소리 하나하나에 담긴 깊은 사랑도 말이지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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달걀을 깔끔하게 깨려면 흔들흔들
서너 번 좌우로 흔들어서 달걀 막이 껍질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대
신발을 잘 신으려면 뒤집어서 흔들흔들
신발을 침대로 삼고 자던 녀석들을 깨워 내보내야 한다네
사람을 얻으려면 흔들흔들
마음을 흔들어 이 사람 좀 괜찮네라는 말을 떠올리게 해야 한다는군
흔들흔들 흔들 생각은 흔들의자가 없어도 될 거야 우린 흔들리게 태어났으니까
일단 몸을 흔들흔들 음악이 있으면 더 좋겠지 흔들흔들 마음도 흔들흔들
네가 흔들리는 건 당연해 나도 흔들려 우린 흔들려
목이 엉덩이가 팔이 다리가 가만있어야 한다면 얼마나 갑갑하겠니
김미희 시인의 <흔들흔들>
종종 마음이 흔들릴 때면
세상은 왜 날 가만두지 않는 걸까 원망이 앞섭니다.
시간에 맡겨두면 괜찮겠지 했는데 또 흔들릴 때면
결국 의지가 약한 거라며 스스로를 탓하게 되죠.
고장 난 마음을 어쩌면 좋을까 고민이 깊어질 땐,
애당초 흔들리게 태어났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흔들흔들, 마음의 중심을 잡아가는 게 삶이니까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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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을이 오면
붉게 물든 단풍잎처럼
뜨거운 정열로
사랑하고 싶습니다
중년의 빈 가슴에
가을빛으로 찾아오는 당신은
이른 아침에 마시는
따뜻한 커피의 향기보다
언제나 누이처럼
고운 자태로 피어난 국화의 향기보다
더 향기로움으로 다가오는
당신이 있어 행복합니다
가을에는
한 줄기 바람에 떨어지는
외로운 갈색의 낙엽보다도
가슴을 붉게 물들이는
가을빛 단풍이고 싶습니다
이 가을이 무척이나 아름다운 까닭은
당신과 함께하기 때문입니다
박태규 시인의 <당신과 함께 하는 가을>
고독함에 파묻혀 세상이 무너진 듯
가을을 타는 사람이 있다면 말해줘요.
이 가을, 너와 함께여서 참 좋다고.
그 한마디가 작은 모닥불이 되어
식어가던 마음에 온기를 불어넣어 줄 거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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