살아남기 위해, 이기기 위해 몸부림치는 정치판을 흔히 전쟁터로 비유한다. 그러나 전쟁터에서는 한 번 죽으면 끝이지만 정치판에서는 여러 번 죽고 살고 또 죽는다. 오늘 공천에 떨어졌어도 다음에 또 살아나는 것이 정치. 낙선이나 낙방의 좌절을 딛고 다시 일어선 정치인으로 김대중 전 대통령이나 노무현 전 대통령을 쉽게 떠올릴 수 있지만 거슬러 올라가면 이승만 초대 대통령부터 꼽아야 한다.
그는 13살부터 11차례 과거에 응시해 낙방했다. 이때는 이미 조선의 왕정이 흔들리던 때여서 돈이나 권력 배경으로 합격자를 내정하기 일쑤여서 실력 때문에 떨어진 것은 아니라고들 한다. 이승만은 관직으로의 진출이 번번이 실패로 끝나자 체제와 무력한 왕권에 반발심을 키워 훗날 고종 폐위 운동에 끼어들게 된다. 그렇게 감옥에 가고 감옥에서 선교사를 만나 미국 유학을 갔던 것이다.
김구 선생 역시 낙방을 거듭하다 자신의 배경으로는 한계가 있음을 느껴 서당 공부를 접고 동학에 들어갔다. 그리고 훗날 임시 정부를 이끌게 되는 것이다.
오호 애재라, 개구리가 없어 낙방이라니
이런 걸 옛말에 ‘개구리가 없어 고생한다’고 한다. “有我無蛙 人生之恨 나는 여기 이렇게 있으나 개구리가 없어 인생 한이 맺히누나”라는 고려조 말 대학자 이규보의 글귀에서 비롯된 말이다.
임금이 잠행을 나갔다 산 속에서 글 읽는 선비 집을 발견하고 하루 묵어가길 청했다. 그러나 집주인 이규보는 거절하며 주막집에 가보라고 길을 알려줬다. 임금이 아쉬워 대문을 나서는데 그 집 대문 옆에 붙어 있는 글귀가 ‘유아무와 인생지한’이었다.
임금이 동네 사람들에게 그 글귀의 뜻을 물으니 .....
“까마귀가 꾀꼬리에게 노래 대결을 하자고 도전했다. 꾀꼬리는 기가 막혔지만 열심히 연습에 임했다. 그런데 정작 실력도 없는 까마귀는 개구리 잡으러 돌아다니는 게 아닌가. 그런데 노래대결은 까마귀의 승리로 끝났다. 까마귀에게서 개구리를 실컷 얻어먹은 심사위원 두루미가 문제였던 것이다.”
이렇게 낙선한 사람들의 심정이 오죽했을까? 낙제, 낙방하면 역시 당나라 시인 맹교를 빼놓을 수 없다. 그는 유명한 ‘낙제’라는 시를 지어 남겼다.
“새벽달은 빛을 발하기 어렵고
우수에 젖은 사람은 마음이 힘들어
누가 봄이면 만물이 흥한다 했는가
나 홀로 꽃 위에 내린 서리를 보노라
물수리는 힘을 잃고 병들어 버렸는데
고작 굴뚝새가 날개를 빌려 펄펄 난다
내버려지고 또 내버려져
마음은 칼로 베인 듯 아프기만 하여라.“
맹교는 얼마 뒤 再下第 라는 시를 또 짓게 된다. 다시 낙제하고 만 것이다.
“하룻밤에 아홉 번을 일어나 한숨을 쉬니
고향으로 가는 꿈조차 꾸지 못하누나
이번 불합격이 두 번 째.
헛되이 눈물 머금고 꽃만 바라보노라”
세 번째 시의 제목은 登第 , 드디어 합격했다.
옛날의 잘못된 것 탄식할 게 무어냐
지금 왕조의 넓은 은혜 가이없어라
춘풍에 뜻을 얻고 말발굽 빨라지니
하루에 장안성에 핀 꽃들을 모두 돌아보누나.
당신은 진짜 천리마인가?
영국의 마가렛 대처는 1975년 최초로 여성 보수당 당수가 됐다. 1979년 총선을 승리로 이끌며 최초의 여성 수상에도 올랐다.
그런데 대처는 젊은 시절 화학 회사에 입사시험 치렀다가 낙방한 경력이 있었다. 마침 그 회사 중역이 산업 훈장을 받게 돼 대처 수상 앞에 섰다.
대처가 조그만 소리로 “젊은 시절 당신네 회사 시험 봤다 떨어졌습니다”라고 조크를 건네자 당황한 중역 은 회사로 돌아와 당시 채점표를 찾아 봤다 한다.
“용모단정, 학업 우수, 개성 너무 강함, 협조성 결여”
대처를 제대로 알아보긴 한 것이다.
한유잡설에 백락이란 사람의 이야기가 나온다. 중국 주나라 때 좋은 말을 알아보는 귀신같은 감각을 지녔다는 말 감정사가 백락이다.
‘천리마는 어디에나 늘 있다. 천리마임을 알아보는 백락이 없을 뿐!’
(天里馬는 常有로되 而伯樂은 不常有라)
그러니 인재를 몰라 본 사람들이 문제가 있는 것이지 떨어진 사람에게 문제가 있는 건 아니라고 위안을 삼아도 좋겠다. 다만 한 가지는 명심하자.
군자는 세상이 자기를 알아주지 않음을 원망하지 않고 세상이 자기를 알고 일을 맡겼을 때 부족함이 있을까를 염려하며 늘 자신을 갈고 닦는 것이 본분이다.
노자의 도덕경에는
“내 몸 바쳐 세상을 귀히 여기는 사람
가히 세상을 맡을 수 있고,
내 몸 바쳐 세상을 사랑하는 사람
가히 세상을 떠맡을 수 있는 것이다.”......라고 이르고 있다.
자신의 하루 하루 일상을 설득력과 감동이 있도록 밀고 갈 일이다. 공천 심사 때 자기 소개서만 감동적으로 쓴다고 되는 게 아니다.
탈락한 사람들의 분투와 건승을 기원한다.